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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울 어머니에 대한 추억(1) 산골 처녀, 시집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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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머니는 깊은 산골 소녀였다
매일 양동이를 이고 우물물을 길러 큰 독을 채워야만 했다
그래서인지 어머닌 키가 작으신 이유를 그렇게 생각하고 계셨다

어머니에게 복음을 전해 주신 분은 어머니의 작은 아버지셨다 그 작은 아버지는
일본에서 법대를 나오신 분이었고 일본 총독부에서 기용하려 했으나 거절하시고
목사가 되신 분이었다..아마 살아계셨더라면 함경직 목사님과 거의 동년배가 아니었을까.....하지만 그 분은 젊을때 순교하시고 말았다... 그 작은 아버지로부터 신앙을 물려 받은 산골 소녀는 14살때 십자가를 환상으로 보았다고 한다

그 이후로 산골 소녀는 새벽 기도를 시작하였다  옛날의 그춥고 추운 겨울 어두운 새벽에도 소녀는 알람 시계 하나 없었지만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마자 옷을 껴입고 모두가 잠든 조용한 집을 살며시 빠져 나와 작은 아버지 집으로 간다
목사인 작은 아버지도 아직 시간이 되지 않아 일어나시지 않은 그 시간 소녀는
새벽기도 시간이 아직 이른걸 깨닫고는 툇마루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오들 오들
떨면서 작은 아버지가 일어 날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시간이 제법 흘러서야 작은 아버지는 일어 나셔서 준비를 하시고 방문을 열어 보고는 깜짝 놀라시는 것이다..어린 조카가 새벽 기도회에 함께 가기 위해 시간도
모르고 무조건 와서 대기하고 있는 장면을 발견하신 것이다

어머니는 그 작은 아버지로부터 귀한 믿음을 유산으로 받으신 것이다
십자가의 환상은 어머니의 일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어머니는
그 이후로도 십자가란 말씀만 나오면 눈물을 글썽이셨다
그리고 천국에 가시는 그 날 아침까지 일생 동안 새벽 기도회를 거의 빠지지 않으셨다

나는 7남매중 5째이기 때문에 내가 자랄때는 어머니는 벌써 중년을 넘기고 계셨다 어머니는 너무나 부지런하시고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장사도 하셨기 때문에
여기 저기 아픈 곳이 많으셨다  아프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는 것이 어머니의
생활이었다  

저녁이면 온몸이 아프고 뼈가 쑤셔서 감기 몸살로 꼼짝을 못하고 끙끙 앓는 어머니를 분명히 보면서 잠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면 새벽 기도회를 다녀 오셔서는 바쁘게 집안일을 하시는 어머니를 볼 수 있었다
한 번 두 번이 아니라 나는 많은 날들을 그렇게 사시는  어머니의 모습에 익숙해 있었다

산골 소녀는 18세에 시집오게 된다
신랑은 키가 훤칠하고 준수하게 생긴 미남 총각이었고 젊은 날 일본에 가서 돈도
제법 벌었다는 사람이었다

신랑의 아버지 되시는 분이 기독교인이었는데 산골 소녀의 신앙이 매우 깊다는 그 한가지 사실에 감동을 받아 며느리로 선택을 하셨단다
사실 이 산골 처녀는 3살때 눈병을 앓아 한 쪽눈은 거의 실명되었었고 외모로는
신랑과 비교가 안되는 처지였었다  여자는 어느 누구라도 꾸미는 만큼 외모가 달라 지는데 산골에서 일만 하던 처녀가 언제 모양을 낼 수 있었을까

그럼에도 총각도 아버지의 권유에 의해 신부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신혼 첫날밤이었다
옛날에는 문종이에 침을 발라 손가락으로 구멍을 내어 신랑 신부의 첫날 광경을
엿보는 사람이 있다고 했던가  신랑의 조카되는 처녀가 그렇게 했던 모양이었다
조카되는 그 처녀는 (현재 서울 충현 교회 권사님이시다) 호기심으로 바싹 다가서서 안의 동정을 살피고 있었다

신부가 신랑에게 말을 하였다
"보시다 시피 당신은 잘 생기고 미남인데 난 못나고 볼품이 없어요
그리고 한쪽 눈도 성하지가 못해요..  진실한 맘으로 대답해 주세요
만약 앞으로 살아 가면서 이것이 우리의 결혼 생활에 장애가 된다고 생각한다면
차라리 오늘 하룻밤을 지나기 전에 그만 두시는게 현명할 것 같습니다"
그러자 신랑은 신부를 한번 쳐다 보더니
"나 보기에는 아무렇지도 않소"
"그러면 우리 하나님 앞에서 같이 기도합시다"
신부는 신랑을 앉혀 놓고 간절하게 기도를 했단다

그래서인지 울어머니가  할머니가 되신 훗날에 아버지에 대해서 그런 고백을 하시는 걸 나는 들었다
"첫날 밤 그 이후로 너의 아버지는 나의 외모나 나의 한쪽 눈에 대해서 한번도 면박을 주신 일이 없었다" 라고
사실 어머니도 다른 여인들처럼 화장을 하시고 옷을 차려 입으시면 외모가 그리초라하지 않고 예쁘장 하셨는데 그 당시 아버지에 비해서 많이 기우셨다는 것이다
하여튼 그 광경을 목도한 그 조카는 그 후로 부터 동갑내기에 가까운 외숙모의 팬이 되어 늘 외숙모만 찾곤 했었다

우리 어머니는 기억력이 대단하셔서
보통학교4년이 학력의 전부이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어릴때 배웠던 교과서를 환히
외우고 계셨고 찬송가도 거의 외워서 부르셨고 옛날 복음 성가는 굉장히 길어서
12절까지 있는 것도 있었는데(천국가, 고대가,룻기가등) 그것을 다 외워 부르셔서서 얼마나 인기가 대단했는지 모른다

어머니는 결혼후에도 늘상 일할때 찬송가나 성가를 부르시면서 깡총깡총 뛰어 다니면서 부지런하게 일하셨다고 한다  그러면 시아버지는 며느리의 그 찬송 소리와 왔다 갔다하는 그 모습을 그리 좋아하셨다고 한다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신앙이 요새 말로 하면 딱이었다

시어머님은 안계셨기 때문에 막내 며느리였지만 할아버지는 다른 아들집에는
하루도 가실 생각 않으시고 며느리는 이런 시아버지를 극진히 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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