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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단순성의 기독교(책소개)

첨부 1


* 향유생각
이 책은 베비닥님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솔직히 너무 어려웠다. 이제껏 내가 읽어왔던 책들은 감성위주의 책이었기에, 이렇게 이성적이며, 지적인 글을 처음 대하니, 많이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한번 읽은 책이나, 나에게 별로 감응을 주지 않았던 책은 다시 읽는 편이 아닌데, 이 책은...정말 마음을 꾹~ 참고, 다시 한번 읽었다. 좀더 집중하기 위해서, 다시 한번 읽으며, 컴퓨터로 정리를 해보았다. 이용재님이나, 베비닥님께서는 매번 부산독서모임을 할 때마다, 항상 읽으셨던 책을 컴퓨터로 정리를 해오시기에, 나는 정리하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 이 글을 정리하면서, 15일정도가 걸렸다. 쉬엄쉬엄하기도 했지만, 다시 한번 읽는 심정으로 꼼꼼히 정리하다보니, 많이 어려웠다.

특별히, 이 책에서 가장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분이, <돈>에 대한 언급이 상당히 많이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왜 그렇게 돈에 대한 언급이 많은지...궁금했었다. 하지만, 두 번째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가장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부분 중에 절대적인 부분이, 바로 돈이기에, 또한 물질주의가 팽배해질 대로 팽배해진 현대 사회이기에, 돈에 대한 언급이 상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두 번째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이 책을 통해, 나에게 하고자 하시는 말씀이 있으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내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하는가...특별히, 세상속에서, 물질주의와 성장주의가 팽배한 이 세상속에서, 그것에 물들지않고, 어떻게 살아야하느냐에 대해서...이 책이 명백한 답을 주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꼭 이 책을 읽어보게 하셨다는 확신이 든다.

한글로 18페이지 분량이기에, 긴 요약문이지만, 이 요약문만 읽어봐도 도움이 될 것이다. html보다, 첨부화일로 보면, 훨씬더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되어 있기에, 다운받아서 보기를 권하고 싶다~  


단순성의 기독교 Freedom of Simplicity
리처드 포스터 Richard J. Foster

제 1부 : 단순성의 이론적 근거

1. 단순성의 복잡성
. 단순성을 찾으라 - 그리고서 그것을 믿지 말라 ... 알프레드 노트 화이트 헤드
. 더욱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축적하려 서두르는 복잡성이 우리를 압박하고 있다
. 단순성은 우리가 물질을 물질 그 자체로, 즉 삶을 압박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편리하게 하는 수단으로 물질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그리하여 소유보다 인간들 자체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알게 해준다
. 단순성은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주어진 소명이다.
. 예수님의 삶에서도 단순성이 완전하게 실현되어져 있다
. 끝없는 약속들과 의무 때문에 우리는 허덕이게 된다
. 삶의 욕구 때문에 좌절하고 지칠 필요는 없다. 기독교의 단순성이 서두르지 않는 평화와 강건함으로 우리를 안내해준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헐떡이며 미쳐 날뛰는 참을 수 없는 투쟁속으로 우리를 내보내지는 결코 않으신다.
. 교황 요한 23세 - 내가 나이가 들수록 사고와 행동과 말에 있어서의 단순성이 얼마나 귀중하고 훌륭한 것인지를 더욱 분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 단순성은 다시 말해서 복잡한 모든 것을 단순화시키고 모든 일을 최대한으로 정상적으로 취급하고 명쾌하게 대하는 것 바로 그것입니다.

1) 복잡한 단순성
. 어렵고 복잡한 문제를 쉽게 그리고 독단적으로 처리하지 않도록 해준다. 사실 기독교의 단순성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여 현 사회의 복잡한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충분히 대처하도록 해준다. 반면에 표리부동한 생각은 혼란과 애매함을 야기시킨다. 독단적인 사람은 단순성의 다양함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중성격의 사람은 복잡함 속의 통일성을 인식하지 못한다.
. 진리는 두가지 상반되는 가르침의 긴장이 계속 유지됨으로써 발전되어지는 경우가 종종 많이 있다.
<단순성의 관점>
(1) 단순성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것이기에 축복이다
. 종종 단순성은 어떤 것이다 생각하고 거기에 맞추려 애쓰다가 결국 우리 자신이 상처입고 지친 후에야 거기에 맞추게  된다. 그러나 단순성은 부지불식간에 살짝 나타난다. 그리하여 새로운 의미의 경이로움, 또는 집중력 내지 심오한 능력을 우리에게 스며들게 하여 주는 것이다. 이로 인해 우리는 소명이 있으면 능력 또한 주어짐을 알게 되고 내적인 자발성을 갖고 우리 삶의 양식을 변화시키고 가난한 성직도 그것이 옳은 것이기에 떠맡게 된다.
(2) 단순성이 쉬우면서도 어렵다.
. 우리의 삶들이 단순성으로 하나가 되어야 하는가 하고 의혹을 갖게 되는 때가 있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로 다가가고 있는 느낌을 종종 갖게 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경우가 많다.
(3) 단순성의 내적 차원과 외적 차원의 문제이다.
. 한계의 설정은 필연적으로 삶을 파괴할 뿐이고 오로지 성령만이 우리에게 참된 삶을 주는 것이다. 복음은 단순성을 가져야만 자유와 해방을 가져다 준다.
. 성령안에서 걷게 될 때 우리의 삶은 순수해지고 하나가 되며 은혜스러워진다.
(4) 물질이 좋은 것이면서도 그 한계가 있음을 동시에 주장한다.
. 기독교의 신앙은 물질을 하나님께서 우리가 즐기도록 만들어 주신 선한 것으로 여긴다. 물질을 하찮은 것으로 생각지 않는다. 나쁜 것으로나 죄악으로는 더더욱 여기지 않는다. 먹고사는 문제만으로 삶을 바라보는 자체에서 비극이 시작된다.
. 어떤 사람이 말할 때 심지어 그가 말하는 것이 사실인데도 뭔가 미심쩍고 신빙성이 결여된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 반면에 어떤 사람의 경우에는 그와 같은 말을 똑같이 표현했는데도 내적인 공감, 하나됨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이 두 사람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한 사람은 단순한 대답만을 준 것이고 다른 한 사람은 단순성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2) 부분과 전체
. 과잉단순화는 어느 학문에서나 위험스러운 것이다.
. 이 책에서는 단순성이 기독교의 전체적인 소명과 통합되어져 있다.
. 아이들은 아버지는 얼마든지 팬케이크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먹고 싶을 때 달라고만 하면 자신들에게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아이들은 믿음 속에서 살고 있다. 이러한 믿음의 정신이 없이는 일용할 양식에 대해서 기도로써 의존해 사는 것이 무척 어렵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 바울은 기독인들에게 근심으로부터 자유로와지라고 권면했다
. 우리가 배운 모든 것과 우리 문화의 모든 것들은 근심할 필요가 없는 자유로운 마음과는 상반된 것들이다.
.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4:6)
. 기도는 우리에게 믿음을 가르쳐 줌으로 해서 우리를 근심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준다. 그리고 평화를 가져다 준다.
.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7)
. 단순성과 고독은 하나의 길이다. 고독이란 남으로부터 갈채와 인정을 받으려고 애쓰지 않고 자유를 찾는 내적인 충만을 뜻한다. 고독을 통해서 우리는 진정으로 홀로 있을 수 있다. 왜냐하면 고독을 알 때만이 남의 칭송을 바라지 않게 되고 그런 관계가 될 때 비로소 진심으로 그들과 함께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 다른 사람의 생각에 쉽게 따라가는 풍조는 현재 사회가 갖는 커다란 이중성의 원인이 된다.
. 있는 그대로 검소한 생활을 하면 남들도 우리가 단순성 속에서 산다고 여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신에 대한 남들의 평가에 너무 신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 우리는 올바른 것을 행할 수 있기를 진실로 바라고 있지만 우리가 남에 대한 그런 자의식을 느낀다는 점에서 스스로 진정한 단순성이 결여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은 솔기가 없는 옷처럼 완벽하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 단순성의 요체이며 그 복합성의 원인이 된다.
. 우리는 우리 생각에 간단하고 쉽게 이해될 것같은 주제가 실제로는 아주 복잡할 때 낙심하기 쉽다.
. 단순성은 스스로 단순성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할 때 이미 그 단순성을 잃게 되는 것이다. 단순성에는 많은 함정과 위험이 붙어 다닌다.
. 여러분이 단순성의 복잡함에 대해서 두려움을 느끼는 자체가 단순성의 은총에 다가가는 첫걸음이다
. 여러분이 예수님과 그분의 삶을 진심으로 알고 싶어한다면 예수님은 진실로 여러분께 가르쳐 줄 것이다.
.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은 쉽지만, 그 가책이 어떤 것인지 정의하기란 아주 어렵다.

2. 성서의 근거 구약성서
. 하나님에 속하지 않는 모든 풍요로움은 나에게는 보잘것없는 것일 뿐이다 - 성 어거스틴
. 우리가 하나님의 성격을 알게 되면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 단순성을 갖는 믿음의 마음은 풍부한 성경지식을 바탕으로 자라나는 것이다.
. 우리는 물질주의자이기를 원하지 않았어도 항상 물질의 은혜를 받았으며 또 그 물질을 축적할 수도 있었다.
. 진실로 구약성서의 계시는 어느 곳에서나 적용될 수 있는 삶에 대한 심오한 통찰력을 제시해 준다.

1) 전적인 의존
.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음을 전적으로 믿으라는 것이 내가 말하는 요점이며 또한 단순성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요체인 것이다.
. 우리가 피조물이라는 원리를 깊이 되새겨야 한다. 우리는 우리 영혼의 주인이 아니며, 우리 운명의 지배자도 아니다. 우리는 창조된 질서의 일부분이다. 우리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존해야 한다.
. 우리 개인의 인격을 위해서도 우리는 하나님께 의존해야 한다. 우리의 개성과 존엄성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진 인간 창조에 근거를 두고 있다. 단지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치있을 수 있다. 하나님의 놀라운 진리는 재력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는 오늘날의 세태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것이다.
. 독립이란 커다란 희생을 가져오게 된다. 특히 하나님의 은혜로운 축복을 거부하고 독립을 주장할 때, 보다 큰 희생이 따른다.
. 단순성은 하나님께 의존하는 마음을 다시 갖는 것을 뜻한다. 믿음의 성령 속에서 우리는 어린 아이같이 살아야 한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서 우리가 받은 것이다.

2) 전적인 순종
. 아브라함은 야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은 것이다. 이러한 거룩한 순종이 바로 단순성의 삶의 토대이다.
.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만이 우리의 찬양을 받고 우리가 순종하는 분이 될 수 있음을 다시한번 깨달아야 한다.
. 출세욕이라는 무거운 짐을 벗어 던질 수 있는 자유가 오늘날 가장 절실하게 요구된다.
. 알콜 중독자처럼 탐욕심에 빠져 들어가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이렇게 되면 다른 사람의 도움없이는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중시하는 자신의 내적인 마음을 감지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탐욕심이라는 우상숭배를 경계해야만 한다. 물질적인 것이 우선이 되면 전적인 순종은 불가능하게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3) 풍요롭게 베푸심
.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풍요롭게 베푸신다는 사실이다.
. 만일 우리가 이 축복들을 정신적인 것으로만 생각한다면 말씀에 대해 불경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 이러한 하나님의 물질의 축복은 조건이 수반되는 약속임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그것은 결코 백지수표가 아니다. 거기에는 단서가 있다.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사1:19). 다시 말해서 모든 약속의 축복에 조건이 되는 것은 단순성의 내적 성격 즉 거룩한 순종,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순종의 또 하나의 중요한 점은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들에게 자비와 양식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우리가 더욱 훌륭하게 되도록 하기 위하여 물질적인 축복을 유보하시기도 하신다. 이것은 축복의 양식을 주시는 원칙에는 어긋나는 예외적인 것이다.
. 순종은 욕심과 탐욕을 없애 주는 정신이다. 자비, 헌신, 감수성, 믿음의 정신이다. 이러한 내적인 기질이 우리의 인격을 떠맡게 되면 물질이 우리를 해치지 못하게 된다.
. 약속된 축복의 양식은 거의 예외없이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를 위한 것이다.

4) 풍성하게 받았으니 풍성하게 베풀라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우리도 줄 능력이 있게 된다
. "50년절"의 요점은 하나님을 기쁨으로 믿는 근심없는 마음, 그것이다.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은 무엇이나 주실 것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은 이렇게 약속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내 복을 내려주리라(레25:21)
. 땅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가치가 없으며 "50년절"이 될 때까지 그 땅이 생산해낸 추수량에 의해서만 가치가 있다.
. 이스라엘 백성들은 땅을 소유할 수 없었다. 그들은 단지 땅의 사용권만을 얻은 것이다. "토지를 영원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레25:23)
. 축적이 아닌 공평한 분배의 원리, 소유가 아닌 관리의 원리
. "50년절"의 원칙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의와 공평함에 대해 깊고 변치않는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 그들은 나머지 수확을 얻을 수 있음을 믿으며 첫 수확은 하나님께 바친 것이다. 이 계율은 모든 것을 풍성히 축복해주시는 하나님께 행위로 나타내는 고백이다.
. 십일조는 해방과 자유를 뜻하는 것인데도 십일조가 인간을 속박하는 수단이 되었던 적이 많았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 여기에는 남에게 베푸는 것의 기쁨과 자유의 정신이 담겨 있다.
. 우리는 십일조와 관련된 계율속에서 하나님께서 가난한 사람과 궁핍한 사람들을 특별히 돌보고 계심을 알 수 있다.
. 3년마다 십일조는 모여지며 특히 자신을 스스로 돌볼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쓰여졌다.
. 농경사회에서는 토지가 생계의 주된 수단이었다. 그래서 레위인이나 성중에 우거하는 사람들은 생계의 수단이 없었다. 또 가부장적인 문화속에서 고아와 과부는 일상적인 생계수단이 없이 살아갔다. 그 당시 유대 문화의 성격상으로 볼 때 네 부류의 사람들이 가장 스스로를 돌볼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자비로운 관심을 보이셨고 이러한 그들에 대한 몫을 십일조에 포함시켜 적어 놓으신 것이다.
.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조건없이 그에게 주셨듯이 그도 롯에게 조건없이 준 것이다.

5) 자비의 소명
. 자비와 공의가 합쳐질 때 단순성의 삶이 우리에게 이루어진다
. 하나님께서는 상처받고 절망한 사람에게 자비로운 관심을 보여주신다.

3. 성서의 근거 신약성서
. 하나님의 나라와 관련이 없는 한 내가 소유한 어떤 것에도 나는 가치를 부여할 수 없다 - 대이빗 리빙스턴
. 예수님은 그들이 지고 있는 가장 무거운 짐 중의 하나인 내일 먹을 것에 대한 걱정의 짐을 벗겨 주시려 했다
. 예수님은 사람들이 부자가 되려 애쓰다가 상처받는 것을 보셨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스스로 양식을 준비하는 것을 자신들의 책임, 그것도 가장 신경을 써야 할 책임이라고 믿고 있음을 아셨다. 사도 바울은 부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고통으로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다"고 말했다
. 또한 예수님께서는 부자가 되려다 실패한 사람들이 얼마나 가슴을 아파하는지도 아셨다. 그 당시에는 가난하다는 것이 하나님께서 그를 미쁘게 생각하지 않으신다는 표시로 간주되었다.
.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지나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 제자들이 얼마나 당황했겠는가를 상상해보라.
. 사람들은 자신이 가난하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신들에 대해 기뻐하시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받고 있음을 예수님은 잘 아셨다.
. 예수님은 더 나아가서 이미 부자가 되었고 또 그 부에 집착하는 사람들의 괴로운 짐에 대해서도 아셨다.
. 부의 기만성 - 부라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부를 믿도록 유혹하기 때문에 아주 기만적이다. 예수님은 부에 따르는 함정과 그 영적인 파괴성에 대해 아셨다.
. 부자청년은 많은 재물을 소유했을 뿐 아니라 그 재물이 그를 소유하기도 했다.

1) 우리의 중심이신 예수님
. 우리는 더 이상 이방인들 같이 내일에 대해 가슴조이는 짐을 등에 지고 살 필요가 없다. 우리는 눈과 마음을 하나님께 향하고 자유롭게 "먼저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면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주실 것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세속적인 물질의 힘으로 우리 자신을 보호하려는 생각이 있는 것을 아시고 그런 생각을 버리라고 말씀하시면서 세속적인 제물을 축적해서는 안되며 하늘 창고에 재물을 쌓아야 하는가에 대한 세가지 이유를 밝히셨다.
(1) 이 세상이 재물을 쌓아두기에는 안전하지 못하다
(2) 우리는 무엇을 보물로 삶든지 우리의 삶은 그것에 집착한다 - 우리의 모든 것이 예수님과 예수님의 왕국이라는 단 하나의 보물에만 향하면, 우리는 단순성의 빛 안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3) 먹을 양식은 이미 준비되어져 있다 - 우리가 일하는 이유는, 걱정하는 불신에서가 아니라 믿음속에서이다. 즉 우리를 일하게 하는 것은 내일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 아니라 성스러운 명령에 대한 순종이다.

2) 가난한 사람을 자신과 같이 돌보라
. 기독교의 단순성은 반드시 가난한 사람들과 힘없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예수님을 중심으로 한 삶을 살게 되면 머지 않아 곧 이웃에 대한 사랑을 갖게 된다.
.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게 하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일하라(엡4:28)
. 참되고 바른 신앙은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약1:27)

3) 재물의 위험
.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눅12:15)
. 우리는 신약성서의 저자들이 우리에게 새 계율을 주려고 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 모든 성서의 가르침은 본래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단순성의 사랑에 의지해 쓰여졌다는 데에서 그 한계성이 있다.
. 내가 만일 궁핍한 자들을 집에 데리고 옴으로 내 자신의 가정이 파괴된다면 나는 사라이 아닌 어떤 것에 이끌려 행동한 것이다 - 달라스 윌라드
. 신약성서는 재물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소유에 대한 자유롭고 가벼운 마음의 태도가 합일되어지는 것을 말한다.

4) 불붙은 형제애
. 형제애로 관대히 베푸는 것과 거룩한 권능의 얽혀진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사도들로 인한 "기사와 표적"에 대한 말씀 바로 다음에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라고 쓰여져 있다.
. 초대교회 교인들은 성령에 이끌리는 삶을 살았으며, 그 성령이 매순간 변화시켰다는 점이다. 그들의 살에는 표적과 기사와 모든 종류의 기적이 아주 많았다. 그들은 성령의 능력을 느끼고 보았다.
. 그들은 하나님께서 놀라울 정도로 베풀어 주심을 알았기 때문에 물질에 대한 소유욕에 얽매이지 않았으며 인색하게 굴지 않았다. 그것은 그 사람들이 성령으로 인하여 건강한 심신을 갖도록 치유되었으며 올바른 형제애를 갖게 되었으며 봉사하는 지도자의 정신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분명히 그들에게 임재하셨기에 재물의 공동소유는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  하나님의 능력이 강함을 알았다 해서 그 능력이 반드시 우리의 자기중심적인 속성을 지속적으로 변화시켜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십자가 아래서 거룩한 순종 안에서 사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간구하면 불같은 성령이 경제적인 관계를 포함한 모든 것을 불같이 타오르게 해주는 것이다.
. 한때 나는 단순성의 삶을 모든 사람에게 다 강요했었다.  그렇지만 그 모든 것이 다 소용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는 한 단순성의 삶또한 또 다른 근심되는 짐이다. 하나님 나라의 능력이 우리에게 주어질 때만 우리는 믿음속에서 살 수 있다.

5) 우리의 권리를 깨끗이 포기하는 자유
.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4:14)
. 남에게 관심을 가질 때 자기자신의 소유를 주장하는 강박관념은 사라지게 된다.

6) 명예롭지 못한 십일조 행위
. 십일조는 하나님 나라의 삶을 특징짓는 소유에 대한 근심없는 무관심을 구체화하는 철저한 개념이 되지 못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유의 주시지 단지 10%가 아니기 때문이다. "맘몬"의 욕망을 없애지 않고도 얼마든지 십일조의 계율을 지킬수도 있다.
. 십일조를 지키면서도 동시에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들을 얼마든지 핍박할 수 있다.
. 박하와 회향과 근채는 정원에서 자라는 초목들로 그것들에 대한 십일조는 아주 적은 것에 불과했다. 그렇게 사소한 것까지 십일조를 지키면서도 의와 인과 신을 버렸으니 얼마나 비극적인가!
. 십일조는 하나님께서 만물의 주되신다는 것을 인정하는 첫단계일 뿐이다. 십일조는 시작이지 결코 끝이 아니다.
. 두렙돈을 넣은 과부는 세심한 절약보다도 마음껏 베푸는 쪽을 택했다.

4. 사도들의 단순성
. 경건한 위인들의 놀라운 한 특징은 그들이 아주 다양한 특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동일성을 보여주고 있다.

1) 넘치는 사랑과 공동소유
. 신앙이 없는 갈릴리인들은 그들의 가난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리의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해가 된다
. 모두가 이웃에게 봉사해야 한다. 부자는 가난한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의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주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 기독교인들은 신앙 때문에 직장을 잃은 사람들도 돌보아야 한다.
. 기독교인들은 재난이 일어났을 때 열심히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
. 반복적이고 지속적이며 희생적인 헌신은 종교적인 운동이나 세속적인 운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충실히 따르는 결과이다. 그 당시의 교인들은 하나님은 주인되시며 모든 은총은 하나님께서 내려주신다는 것을 온전히 믿었다. 그들이 인색하지 않게 베푼 것은 하나님의 관대함을 따른 것이다.

2) 거부하는 능력
.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벌수 있을까 <-> 가능한 한 없이 지내야지
어떻게 하면 나를 세워 나가지 <-> 가능한 한 나를 파묻고 살아야지
어떻게 하면 출세해서 명예를 얻을 수 있을까 <->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더 사랑할수 있을까
. 초연함은 우리를 다른 사람들의 지배로부터 해방시켜 준다. 다른 사람이 우리의 생계수단을 쥐고 있어도 그로 인해 그들에게 지배당하지 않는다.
. 침묵은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준다. 다른 사람들을 다루고 통제하기 위해 말을 사용하는데 우리는 익숙해 있다. 그들이 우리에게 동의하고 우리 식으로 세상을 보기를 몹시 갈망해 말한다.
. 우리는 말로서 사람들을 평가하고 판단하고 비난한다. 우리는 말로 사람을 해친다. 침묵은 말에 마개를 닫아주는 기독교 정신의 뿌리깊은 계율이다.
. 이웃들과 함께 할때 삶과 죽음이 있다. 우리가 우리의 형제들에게 선을 행하면 곧 하나님께 선을 행할 것이고 우리가 우리의 형제를 비방하면 곧 하나님께 죄를 범한 것이기 때문이다.
. 기도는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고 하나님께 의지하게 해준다. 기도는 곧 변화이다.
. 오리들 모두는 우리의 삶을 초연함과 헌신과 기도의 단순성으로 이끌리게 해주는 새 부대에 담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 간구할 필요가 있다.

3) 기쁨의 단순성
. 창조된 자연을 사랑한다는 것이 단순성의 특징이다.
. 예수님이 사도들에게 주신 성령의 은총 중에서도 예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극복하고 기꺼이 고통과 모욕과 창피함과 역경을 감수하는 능력이 가장 큰 은총이다.

4) 단순성의 신학
루터는 중세의 겉치레적인 형식들이 성서의 권위를 훼손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성경만을 의지하라>는 말을 했다.
. 죄에서 벗어나게 되므로 서로 봉사할 수 있게 된다. 이전에는 우리가 행하는 모든 봉사는 우리 자신을 위한,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님께 의롭다함을 받기 위한 방책일 뿐이었다. 그러나 사실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 수 있는 것은 단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와 같은 은총을 이미 베푸셨기 때문이다.
. 우리가 여전히 다른 사람의 굴레에 예속되어 있다면 우리의 모든 행함도 예속될 수 밖에 없다. 남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거나그들의 도움을 받으려는 욕망에 지배받게 된다.
. 그러나 일단 하나님의 은총이 우리의 삶에 스며들면 우리는 자유로와진다
. 기도교인은 자신 안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이웃들 안에서 사는 것이다. 이렇지 않다면 그는 기독교인이 아니다.

5)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순종함
.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귀기울인다는 점에서 퀘이커 교도들은 하나의 놀라운 단순성을 보여주고 있다.
. 초기 퀘이커 교도들은 복장에서도, 말할 때도 단순했고, 맹세하기를 거부했다.

6) 행동의 단순성
. 그들의 삶이 단순성을 가졌기 때문에 그들이 전파한 복음에는 진실성이 있었다.
. 나는 하나님을 따르는 삶을 살기 위해 가는 것이다.
. 나 자신을 위해서 돈을 적게 쓸수록 다른 사람들에게 더 많이 베풀 수 있으며 내 영혼이 더욱 기뻐지며 더욱더 은총을 받게 된다는 것을 나 자신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7) 말씀에 의지해 사는 삶
. 예수님을 모방하는 단순한 삶을 이룰 수 있게 해주는 방법은 바로 기도와 사랑이다
. 완전하게 자신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선함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이 마음의 순수성을 위해서 하나만을 바라는 것의 필수조건인 것이다.
. 존 울먼은 내적 단순성과 외적 단순성 둘다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한다. 그는 장사가 잘되어 사업확장의 기회가 눈에 보이게 나타났음에도 마음속으로는 망설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필수품이기보다 사람들의 허영을 충족시켜 주는 상품을 팔아야 하고, 그 자신에게 내려진 주님의 소명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서는 <방해되는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와져야 할 필요가 있다는 단호한 문제로, 그는 사업을그만두었다.
. 모든 일에 있어서, 단순성을 사랑하라~


제2부 : 단순성의 실천

1. 내적 단순성 : 거룩한 중심
. 축복의 단순성은 지칠 때까지 허영만을 추구하는 영리함으로는 아무리 애써도 알기 어려운 모든 것을 즉시에 알도록 해준다

1) 중심점에서 사는 삶
. 우리는 수많은 의무감을 느끼며 그것들을 모두 이행하려고 애쓴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는 불편하게 되고, 긴장되고, 압박받게 되고 인정머리 없는 사람이 될까 두려워하게 된다.
. 문제가 되는 것은 오히려 내 자신이 올바른 일을 행함에 너무 진지하게 집착해서 봉사해 달라는 모든 부탁을 완전히 다 들어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다.
. 나는 결정을 앞두고 항상 기도했지만 나는 너무 종종 그러한 행동이 내 자신에게 <유리한 입장>을 줄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 근거해서 결정을 내렸다. 내가 만일 <아니오>라고 말했을 때 그들이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에 대해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 나는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 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조용히 하나님께 간구했다.

2) 우리의 여러 가지 자아들
. 하나님은 모든 것에 존재하시며, 모든 것을 주관하시며, 모든 것 위에 계신다. 이것은 창세기식의 하나님을 이해하려는 범신론적인 해석이 아니다. 그것은 놀랍고 장엄한 유일신론이다. - 우리의 삶은 하나님을 통해서만 유지된다는 것이다.

3) 영원한 하나님과의 교류
. 나에게 있어서 일하는 시간과 기도하는 시간은 차이가 없다. 시끄러운 부엌에서 여러 사람이 떠들어 대도 나는 성찬식 때 무릎꿇고 앉아서 느끼는 그러한 평정 속에서 하나님을 내 안에 모실수 있다.
. 훈련을 통해서 점차 습관이 붙게 된다.
. 하나님께서 보고 웃으시고 이에 다시 하나님께 미소보낼 수 있다면 그것은 영혼이 아니라 살아있는 존재이다.
.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사람이나 나무나 꽃이나 모든 색채나 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다.
. 우리들 자신이 아니라 남들을 중심으로 이러한 경기를 진행할 때 이 경기의 진가를 더욱 나타내게 된다. 우리가 만일 매순간을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 집중하고 있는가에만 주된 영적 관심을 기울인다면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함께 하도록 하는데 많은 시간을 쏟는다면 더욱더 좋은 것이다.
. 우리는 내적으로 진실된 목자의 말에 친숙하게 된다.

4) 만족의 원리
(1) 우리가 존경하는, 분별의 능력이 있는 형제자매님들과 함께 이야기하도록 하라
(2)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 때문에 걱정으로 불안해지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걱정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고 그들을 도우라
(3) 자식들의 행복에 대한 걱정으로 불안해진다면 결코 부끄럽게 생각하지 마라.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4) 우리가 스스로의 처지를 한심하게 생각하고 좀더 잘되기를 바람으로 해서 불안감을 갖는 경우도 무조건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5) 우리의 불안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내적 평화의 결핍에 기인된 것이 아닌가를 잘 생각해보라
쾌적한 환경을 원하는 순수한 바램과 강박관념에서 비롯된 그릇된 욕망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7) 거룩한 사랑에서 샘솟는 바램과 돈에 대한 사랑에서 일어나는 탐심을 구별하여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도록 하라.
의지를 갖고 탐욕심에 기인된 모든 행위들을 깨끗이 씻어 내도록 하라.

5) 내적 단순성을 기르는 방법
(1) 침묵훈련
시끄러운 소음을 피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조용히 침묵으로써 우리 마음에 존재하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2) 하나님께서 정하신 삶의 주기에 조화를 이룬다
. 먹는것,일하는 것, 노는 것, 잠자는 것은 다 조화가 있다.
. 자기자신의 활동하는 시간과, 침묵하는 시간의 주기를 알면 큰 도움이 된다.
. 열심히 활동하지만 속은 텅 빈 삶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 우리도 우리의 여행길에서 하늘의 만나를 받을 수 있는 많은 <머무는 장소들>을 찾아내야 한다.
(3) 자기형편에 걸맞지 않은 감정적인 사치를 거부하는 생활을 해야한다.
. 우리사회의 정신적인 한계를 이해하고 자기 자신의 분수에 넘치게 살고 싶은 허영 때문에 정신에 균열이 생긴다.
. 자기만이 세상을 이끌수 있다고 떠들어 대는 사람들의 기만성을 이해하고 그들을 거부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것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4) 한달동안의 모든 행동을 기록해보고 순위를 매겨보라~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행동,   필요했던 행동,   간혹 도움이 되었던 행동,   사소한 행동
(5) 의식적으로 모든 것을 심각하게 생각해보고 반성하는 생활을 하라
우리는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받아들이기만 해서는 안되고, 사건들의 숨겨진 참의미를 깨달아야 한다.
어떤 일에 대해서 미리 맹세하기- 혼인의 맹세
맹세는 꼭 지켜야 하기 때문에, 많은 고통스러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6. 내적 단순성 : 거룩한 순종
. 홀로 선하신 하나님만을 갈망하는 것이 내적 단순성이다.
. <주여!>하고 말할 수 있지만, <주여, 안됩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진실로 불가능하다.

1) 거룩한 순종
. 자기 부인은 불평 또는 자기 혐오가 갖는 의미 이상의 것이다.
. 우리는 참된 자기 완성은 오로지 자기 부인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더 놀라운 역설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10:39)
. 우리의 하찮은 삶에 연연하지 않고, 무한히 크고, 보다 진실된 존재에 매달리게 되는 것이다.
(1) 자기 부인의 단순성을 실천하는 3가지 단계
  재물이나 외적인 것에 끌리는 우리의 마음을 해방시키고 정신적인, 내적인 것을 예민하게 느끼고 생각하게 되는 단계이다.
  우리들 자신과 우리들의 운명에 대해 여러 가지로 생각하는 위치에서 모든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의 중심에 의존해서 생각하는 위치로 이동하는 단계이다.
. 순수함의 덕성을 지녔다 해도 단순성까지 지니게 되지는 않는다. 순수성을 탓할 수는 없겠지만 그 사람들에게는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일종의 인위적인 결점이 있다. 그들은 우리를 몰아붙이고 쉽사리 우리를 피곤하게 만든다.
. 실제로 이것은 그 신실한 사람들이 너무 어려운 방식으로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내적인 단순성을 특징짓는 편안함, 자유 그리고 자연스러움이 결여되어 있다. 그 사람들보다는 덜 완벽하지만 그들보다 편안하게 느껴지는 사람들에게 더 호감이 가게 된다.
. 우리는 이러한 단계를 너무 빨리 경험하도록 재촉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움직여 나감에 따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관심이 점점더 거룩한 중심으로 향해지는 제3단계로 우리를 의당 인도해주신다. "자기보다는 하나님을 더욱 많이 생각하게 되며 이기심이 없는 사람으로서 하나님께 더욱 관심을 갖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자기자신을 잊게 된다. "
  놀라운 덕성
. 이 단계에서 사는 사람들을 우리는 존경하고 함께 있기를 좋아한다.
. 더 이상 숨막힐 정도로 자기 자신에 집착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진지하게 돌보는 새로운 자유의 은총을 갖게 된다.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들의 말에 너무 구애받는 부담을 벗게 된다.
. 지나치지 않고 자유롭게 스스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묘한 자유가 있다.
.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를 따랐듯이 너희도 나를 따르라"(고전11:1)라고 신도들에게 주장할 수 있을 정도의 막힘이 없는 자유를 소유했다. 바울은 속좁은 자기 자랑을 넘어선 것이다.
. 침묵을 지키는 것은 자기애를 대처하는 좋은 방법이다.
. 남들이 자신에 대해서 칭찬하는 것을 자유롭게 받아들여야 한다.
. 전에는 하나님을 찾는 것이 어려운 일이었지만, 이제는 하나님을 따르는 것을 방해하는 더 많은 일들이 생긴다. 실제는 반대로 되는 수가 많기는 하지만 천천히 그리고 확실히 하나님을 아는 것은 괴로움이 아니라 기쁨이다.
. 우리가 진실로 내적인 단순성 안에 있게되면 우리의 전체적인 모습은 보다 솔직하고 보다 자연스럽게 되어진다. 이 참된 단순성으로 인해 우리는 어떤 개방성, 부드러움, 순진성, 쾌활함, 조용함을 인식하게 된다.

2) 증거되는 기쁨
. 순하고 순종하는 영혼일수록, 거부하거나 지체함 없이 자신을 맡길수록 그만큼 더 단순성으로 나아갈 수 있다.
. 용감함이 아니라 기쁨이 거룩한 순종의 순전한 증거이다. 우리가 행함에 있어서 너무 심각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편안한 마음을 지닐 필요가 이다.
.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는 일은 자유로이 기쁨으로 되어져야 한다.

3) 겸손함의 출발
. 겸손함은 추구한다고 해서 얻어지지 않는다. 거룩한 순종이 겸손함을 이루는 열쇠이다.
. 항시 하나님을 느끼고 있음은 반드시 자기중심적인 자기 의식을 제거해 준다. 하나님만 봄으로 눈이 먼 사람은 자기자아를 보지 않는다. 오로지 거룩한 성령만을 본다.
. 우리는 자기만의 자기 중심과 뻐기는 오만에서 벗어나기를 수없이 갈구해 왔다. 우리는 단순성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필요없는 고민을 해왔다. 약간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뻐기고 거드름을 피우지만 결국 그것은 허영의 소치이다.
. 하나님을 가슴에 둔 사람은 오로지 한 목적, 한 목표, 한 가지 바램만을 갖는다. 하나님은 우리의 비젼 자체이며, 우리의 눈은 단순성의 눈이다. 우리의 전신은 하나님의 빛으로 가득차야 한다.

4) 첫단계
. 살아계신 스승되시는 하나님께 항시 집중하도록 애쓴다.
(1) 자기 중심적이고자 노력하지 않아야 한다.
. 행할 것은 없다. 그 문제를 없던 것으로 하라. 이러한 문제는 우리의 삶에서 정면대결로는 결코 해결되어지지 않는 것들중의 하나이다. 문제 해결에 신경을 집중시키면 문제점은 두배로 어려워진다. 이 문제는 우선 이 문제를 잊고 다른 문제에 우리의 관심을 기울이기만 하면 문제 해결이 된다.
(2) 먼저 하나님 나라를 찾으라
. 무엇이거나 그것이 우리의 중심이 되면 그 순간 그것은 우상이 된다.
. 사실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첫 번째로 중시할 때 부의 적당한 분배, 생태학적 관심, 공해, 빈민구제, 단순성 그리고 필요한 모든 것들의 문제에 우리는 적당하게 관심을 가질수 있다.
. 하나님 나라에 뿌리를 내리지 않는 모든 행동은 중지하라. 궁극적인 중심점을 갖게 되기까지 조용히 침묵하고 행동하지 마라.
(3) 가능한한 모든 방법으로 예수님께 순종하기를 시작하라
. 곧바로 시작하라. 더 많은 시간이 있고, 더 완벽한 지식을 가질 수 있는 미래의 어떤 시간을 기다려서는 안된다.
(4) 절룩거리고 쓰러졌다 하더라도 즉시 일어나 계속앞으로 나아가라
. 완고한 자기의지 때문에 하나님의 소리를 거부했던 많은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것을 슬퍼하는데만 과도한 시간을 허비할 필요는 없다.
. 거룩한 순종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과거나 오늘 아침에 말씀에 잘 따랐는가 안따랐는가에 달린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순종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하늘 나라의 빛으로 인하여 다른 모든 잡다한 것을 제쳐둘 수 있는가의 문제와 단순성의 눈으로 단순성의 삶을 지금 살고 있는가의 문제가 중요하다.
(5) 우리들과 남들에 대한 모든 헛된 말을 삼가라. 이것은 험담이 아니라, 상대방을 격려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를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해 부추기는 것을 말한다.
. 너무 직선적인 말들도 하지 마라.
. 미화하거나 과장하지 않고 실제로 보이는 것에 대해서 말을 하도록 습관을 길러야 한다.
일기를 쓰라 - 에벤에셀
. 서로간에 일기를 바꾸어 봄으로써 상호신뢰를 갖고 서로 격려할 수 있다.
. 하나님을 향한 불타는 비젼으로 다른 모든 것에는 눈길도 주지 않을 때 우리는 거룩한 순종으로 모든 것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것이다.

7. 외적 단순성의 첫걸음
. 오늘날 우리사회의 병폐는 우리가 얼마를 벌든지간에 자기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독단적이고 신뢰성없는 전통적인 신조이다. 우리가 5만달러를 번다면 그것을 어떻게 쓰든지 그것은 개인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교회에 내는 십일조를 바치고 나면 나머지 90%의 돈은 아무도 참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참으로 자기 소비적이고 옹졸한 생각이다. 어떤 방식으로도 이와 같은 생각을 정당화하기 위해 성경을 왜곡해서는 안된다. 우리의 생활방식은 우리 개인만의 문제는 결코 아니다. 자기 보기에 올바르다고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행해서는 안된다. 성서는 우리에게 보다 많은 것을 요구한다.

1) 율법외적인 의미의 구체성
. 문화나 세상을 변화시키는데는 어려움이 있다.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격리되어 살 수도 없으며 격리되어 살아서도 안된다.
. 우리는 율법주의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2) 타협이 없는 적용
. 옳고 필수적인 적응과 그릇되고 불필요한 타협이 갈라지는 곳이 있다. 오늘날의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어디서부터 적합한 응용, 적응이 사라지고 그릇된 타협이 시작되는가를 알지 못하는 데에 있다.
. 오늘날 방송매체의 선전으로 인하여 그러한 일은 더욱 복잡하게 되었다. 우리는 속고, 기만당하고 세뇌된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이 일어났는지도 느끼지 못할 정도의 아주 미묘한 방식으로 당하게 된다.

3) 스스로 원하는 가난한 삶
.스스로 원하는 가난한 삶의 소명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부탁한다. 소명받은 사람들을 비난해서는 안된다. 논리적이고 현명하게 되는데 너무 서두른 나머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비난하거나 충고하는 일은 가능한 한 서두를 필요가 없다. 먼저 부드러운 마음을 갖고 경청하고 인내해야 한다.
.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마12:20)
. 자신이 선사한 물건을 받는 사람에게 그가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는데 방해물이 되지 않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물건이 되도록 그 물건을 받는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 주어야 한다.

4) 계획성 있는 돈의 소비
. 우리의 소비욕망은 항상 실제로 우리가 돈을 필요로 하는 것과 우리가 가진돈을 넘어선다는 사실이다. 광고선전이 우리를 그렇게 만든다. 욕망을 따라 물건을 사도록 방치하면 결과는 아주 혼란이 온다.
. 훌륭하게 가계부를 써가는 부부는 재정상태가 부실한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 가계부를 작성하는 요령
  돈을 더 벌어들이는 것보다는 우선 더 쓸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일상적인 생활소비품 때문에 빚을 져서는 안된다.
  가계부에 지켜야 할 원칙을 세우는 것이다. 의복값은 한달에 5달러로 정하고, 그것을 초과할때는, 구입을 미룬다.
  가계부가 적자가 되었다고 해도, 점차 돈에 대한 통제력을 가질수 있게 되니, 계속 써라.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 바치는 헌금에 관해서는 우리가 가계부에서 다루는 것과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다른 것에 대해서 돈 쓰는 것은 줄이도록 해야 하지만 반대로 헌금은 가능한 한 늘이도록 해야 한다. 가계 생활비는 줄이고 하나님께 헌금하기에 더욱 힘써야 한다.

5) 소비지향의 사회를 벗어나기
(1) 현대의 광고선전에 대해 거부하는 즐거운 기쁨을 누리라
(2) 어떤 물건을 사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을 때 스스로 그것을 사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내 주시지는 않겠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 누구든지 일단 어떤 것을 구입해야겠다는 결심이 서면 사기에 앞서 한 일주일 동안 번저 하나님께 기도하라. 그 물건이 저절로 입수되어지면 하나님의 은혜주심에 감사드리고 그렇지 않게 되면 스스로의 그 물건에 대한 필요성 여부를 재검토하라. 그러고서도 필히 그 물건을 사야 된다고 생각되면 그 물건을 사면 무방하다.
(3) 삶의 양보다는 질을 중시하라
. 하나님과 가까운 친구가 되라.
.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이 물질적인 욕망을 감소시키는 것이지 물질적인 욕망을 줄이는 것이 삶의 길을 개선시키는 것은 아니다.
.경쟁적인 사회환경의 억압에서 벗어나라.
. 출세욕은 우리가 바래서는 안 될 헛된 욕망이다.
(4) 몸에도 좋고, 재미있으며 장비없이도 가능한 취미를 가져라. - 협동심을 기를수 있는 게임
(5) 음식을 먹을때도 센스있게 감각을 지니고 선택하라.
. 고기만을 찾는 것은 일종의 사치다.
. 가능한 한 자기가 사는 지역에서 생산된 음식을 많이 사도록 하라.
.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절식을 해서 절약한 돈을 가난한 사람들을 도는데 쓰도록 하라.
의미있는 여행과 자기탐구에 빠진 여행을 구분하라.
(7) 실용성 위주로 물건을 구입하라.
. 유행에 따르는 것을 철저히 배격하라
. 가구는 값싸고 실용성과 아름다움을 겸한 것을 택하라
. 물건을 깎아서 사는 법을 배우라 - 바겐세일이나, 벼룩시장.
. 경매와 세일에 가기전에 <내적 초연함>을 갖기 위해 기도하라.
. 값싼 것과 단순성은 항상 일치하는 것이 아니다.

8. 외적 단순성 : 발전적 신앙
. 세상은 모든 사람들의 필요한 것들을 충분히 제공하지만 모든 사람들의 탐욕을 다 만족시키기에는 불충분하다.

1) 헌금할 수 있는 축복
. 단순성은 항상 우리에게 검소한 삶을 살도록 요구하지만 수입을 줄일 것을 항상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 돈으로 헌신한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지옥 가까이 가서 살아야 하는 것과 같다. 돈으로 헌신하는데 가장 위험한 것은 돈이 힘을 가져다준다는 그릇된 생각이다. 영적인 도움 없이는 어떤 사람도 이 중요하고 험난한 소명을 따라서는 안된다.
. 하나님은 우리들이 거침없이 흐르는 수로가 되기를 바라신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것을 즐겁게 전달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월급이든 예상치 못했던 수입이든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의 사도로 쓰고 있음에 우리는 놀라는 것이다.
. 한 기독교인이 부부가 맞벌이를 해서 한쪽 월급을 복음선교를 위해 쓴다면 세계 복음화 사업에 큰 기여가 될 것이다.
. 당신의 수입을 자세히 분석하고서 번 돈의 반만 갖고 살아가는 검소한 생활을 하는 방법이 없을까? 가능하다면 일을 반만 하고 노는 것보다는 그 돈으로 남을 도와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 우리는 그리스도와 우리 서로에게 수입에 대한 십일조는 헌금에 있어서 시작단계의 최소의 계율로서 약속한다.

2) 헌신의 은혜
. 단순한 삶의 태도는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범주의 많은 봉사에 눈뜨게끔 해준다.
. 존 울먼은 여행하며 복음을 전하는 일에 보다 더 신경쓰기 위하여 자신의 사업투자의 규모를 축소시켰다.
. 우리는 헌신함에 있어서 재정적인 문제에만 너무 신경을 써서는 안된다.
. 자기 만족에 기인된 봉사는 노예로서 일하게 되기 쉽상인 것이다. 또 자기가 의롭다고 과시하려는 헌신은 허영에 불과하다.
. 이웃들에게 헌신하기 위해서는 각자 특정한 나름대로의 방식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옆집 정원의 낙엽을 쓸어 주고, 그 아이들을 돌봐 주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는 것 등이 이웃에게 헌신하는 일의 가장 본질적인 것이다.  

3) 희생의 은혜
.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기를 부정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선지자적 단순성의 핵심이다.
. 하나님 나라가 빨리 이루어지도록 헌신하기 위하여 독신으로 지냈던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 바울은 결혼을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누구든지 결혼생활에는 엄청난 시간과 정력이 쓰인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않은채 결혼을 맹세하지는 말아야 한다고 그는 가르치는 것이다.
. 독신 생활이 기독교인들이 택할 수 있는 하나의 좋은 선택이라고 말하지 못한다며 잘못 헌신하고 있는 것이다. 결혼이 모든 사람에게 다 좋은 것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 여러분의 삶을 아내와 자식들에게 바치는 것을 당당하게 여겨라. 여러분이 시급하다고 느끼는 일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을 세우실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느 때인가 그 일과 여러분의 가정에 대한 책임이 서로 양립할 수 있도록 여러분의 상황을 바꾸어 주실 것이다.
. 단식을 하면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가 드러나게 된다.
. 토마스 머튼- 내가 내 형제들을 진실로 사랑할 수 있는 부드러움을 찾게 된 것은 바로 깊은 고독 속에서였던 것이다... 고독과 침묵은 내 형제들을 그들이 말하는 바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들 자체대로 있는대로를 보고 그들을 사랑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전화를 받을 필요는 없다. 우리는 전화의 노예까 아니라 주인이다.
. 공동소유제-사회에 보다 폭넓게 헌신하기 위해 자기 사유재산을 부정하는 것이 공동소유제이다.

4) 가난한 사람들과 하나되기
. 단순성이 외적으로 표현되는 또 하나의 양식은 가난한 사람, 소외된 사람을 의식적으로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일에서 나타난다.
. 우리는 압박받는 사람들의 권리를 위해 싸우고 그들의 고난을 증거하고 정의를 수호해야 한다.
. 가난한 사람들과 하나되게 위해서는 많은 것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하면 안된다.
. 가난한 사람들과 하나되는 또 하나의 방법은 그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다 - 휴가 기간 이용
. 교육은 핍박받은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기 위한 예비훈련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된다.

5) 실제로 실현 가능한 방법들
(1) 간결하고 정직하게 말하는 습관을 갖자.
. 배고파 죽겠네...같은 말은 하지 말자.
(2) 자서전적인 일기를 쓰자
. 해가 지나면서 돈에 대한 여러분의 태도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생각해보자.
. 자신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자.
(3) 자연과 접하기 위한 창조적인 새 방법을 찾으라.
(4) 대상을 소유하지 말고 대상을 즐겨라.
(5) 검소한 축제를 지내는 습관을 가지라 - 이웃들과 외로운 사람들을 초대해 함께 하라. 손님을 후하게 대접하려면 보다 담백하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대접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소비풍조에 대해서는 여러분 이상으로 엄격한 선을 그어 경계하도록 가르쳐라.
. 아이들에게는 그들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어야 한다.
, 아이들에게 자립정신의 생활을 하도록 하라.
. 아이들에게는 세 개의 돈주머니가 있어야 한다. 소비, 저축, 베품
. 아이들도 10분 1은 헌금하고 그 나머지를 갖고 어디에다 쓸 것인지를 결정하도록 해라.
(7) 돈에 대한 사랑에서 야기되는 모든 행동을 억제하라.
. 조용히 침묵하라. 그러면 탐욕과 두려움은 사라지고 사랑과 빛으로 가득 찬 바다같은 평안을 느낄 수 있다. 그리스도의 손 안에서 조용히 침묵하면 악이 패망하고 선이 마음에 떠오름을 느낄 것이다.
. 인색함이 없을 때 검소함은 좋은 덕성이다. 먼저 쓸데없는 과잉지출을 잘라버리고 결국은 그 돈을 궁핍한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라.

9. 공동체의 단순성
1) 교회의 가르침에의 사명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 원한다면 무조건적으로 목사님의 말씀에 따르는 것에는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 진리가 제멋대로 무시될 때.
. 일의 목적은 부위 지위를 얻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있다.
. 부자가 되거나 존경을 받기 위해 행하지 말고, 선을 행하고 죄에서 벗어나는 길을 택하라
. 부의 신학 - 내가 얻기 위해 나는 준다, 기독교적 단순성 - 주기 위해서 나는 물질을 얻는다

2) 비난까지 받지는 않지만 좀더 바람직하게 되어야 할 것들
교회이름, 기부금

3) 미와 실용성 사이에 존재하는 창조적 긴장

4)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살핌
진실을 확실하게 전하기 위해서 화내면서 말해서는 안된다.

5) 경제적인 평형
. 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란하게 하려는 것은 아니요, 평균케 하려 함이니 이제 너희의 유여함으로 저희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저희 유여한 것으로 너희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평균하게 하려 하이라(고후8:13-14)
. 극단적인 부와 극단적인 가난은 기독교의 형제애에 위배되는 부끄러운 것들이며 받아들여서는 안되는 것이다.
. 만나가 주는 교훈은 명백하다.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어야 한다.
◆ 나누어주는 방법
  우리가 쓸만큼 남을 위해서도 쓰도록 계획한다
  재정적으로 어려운 교회를 돕는다
  어느 한해를 정하여 그 해는 특별히 계획된 일을 위하여 전념할 수 있도록 해본다.
. 우리의 풍요로움이 다른 가난한 사람의 궁핍을 야기한다는 사실을 깊이 이해하자.

6) 도움되는 실천 방법
. 서로가 동정심과 인내심을 가지고 살도록 하자.
. 교회의 형식주의를 없애도록 최선을 다하자
.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여러 가지 간단한 방법을 찾아보자
. 목사님들에게 충분한 경제적 여유를 주자
. 함께 즐기는 축제를 갖도록 하자 - 검소한 생활을 하는 가운데서도 <살찐 송아지 새끼>를 기쁘게 잡을 수 있는 때도 있어야 한다.

10. 공동체의 단순성 세계
. 우리는 지구상 문제의 엄청난 심각성에 압도되어 대처할 용기도 느낄 수 없이 무기력해지기도 한다.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눈과 귀를 주신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을 바라보고, 소리를 들으며, 지키라고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1) 권력에 대하여
.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에 감추어진 영적인 의미를 알 때 우리는 희망과 용기를 갖게 될 수 있다.
. 영적이고 신앙적인 것들에 대해서 무엇보다 먼저 대처해야 한다는 것을 알 때 우리는 우리의 나아갈 방향을 정할 수 있다.

2) 세계 복음화
. 문화적으로 어쩔 수 없이 비기독교인이 된 사람들 -> 감추어진 문화권
. 주의 권능 안에서 복음은 전파되어야 한다. 달콤한 말로, 부드러운 속삭임이나 부추기는 속임의 말로 전달되어서는 안된다.

3) 굶주리는 세계

4) 경제적 성장에의 욕망
. 제 3세계국가들이 절제없는 성장의 문제로 씨름하고 있는 반면에 선진국들은 절제없는 욕망의 문제로 허덕이고 있다.
. 성장은 우리 사회의 세속적인 신앙이 되어 있다. 우리에게는 팽창과 확대는 항상 바람직하며, 보다 많은 것이 항상 좋은 것이며, h다 큰 것이 항상 더 좋은 것이라는 사고가 깃들여져 있다.
. 아담 스미스 1776년 [국부론] -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만 하면 전체 사회의 경제적 균형이 이루어진다는 개념이다.
. 물론 기독교에서는 유일한 <보이지 않는 손>은 하나님의 손 뿐이다. 하나님의 손은 우리를 자기 이익 중심주의로부터 가난하고 압박받는 사람들을 향한 정의와 헌신의 마으으로 인도해주신다.
. 성장에 미쳐버린 성장광
. 과식과 과잉소비, 부의 불균형과 기아문제는 염두에도 두지 않고 자신들의 생활양식만을 유지하려는 욕망등은 성서적으로 보아도 틀림없이 죄악이다.

5) 다국적 기업
. 다국적 기업은 보다 정의롭고 살기좋은 세상을 실현하는데 가장 위협적인 잠재적 위험이다.
. 다국적 기업들은 자신들이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이룩하는 건축기사들이라고 주장한다. 각국의 경제를 상호 연결하여 서로 의존하는 세계를 자신들이 만들기 때문에 전쟁은 점점더 불가능해진다고 자랑스럽게 떠들어 댄다.
. 다국적 기업은 인간에게 엄청난 혜택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재원과 조직을 갖고 있다.
. 다국적 기업이 어떤 책임감 내지 의무감을 갖게 되지 않는 한 그 능력에도 불구하고 인류에게 혜택을 주는 황금 시대를 이룩할 수는 결코 없을 것이다.

6) 우리가 해야할 일
(1)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크게 쓰실 것을 믿어야 한다.
(2) 우리는 세상 형편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3) 우리는 힘없고 착취당하는 사람들의 편이 되어야 한다.
(4) 우리는 배고픈 사람들에게 구조물자를 보내는 일에 사명을 받은 사람들로서 그들을 도와야 한다.
(5) 우리는 구조물자를 보내는 것 이외에 정치에도 관심을 두어야 한다. 우리가 정책결정에 관여하지 않으면 다른 자들이 정책결정을 마음대로 해버릴 것이다.
우리는 글을 쓸수 있는 능력을 못배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7) 우리는 기도할 때 사회정의를 실현하기를 간구해야 한다.


   맺는말 : 단순성의 단순성
. 단순성을 아는 것이 너무 방대한 일임에 우리는 놀라 무기력해지기 쉽다. 너무 빨리 실망하고 포기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 나 자신의 삶도 변화시키지 못하면서 내가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겠어. 있는대로 되는대로 놓아 둘 수 밖에는 어쩔수가 없어. 그냥 두는 것이 최선일 뿐이야.
. 우리는 여러 가지 결정을 내릴 필요가 없다. 한가지만 결정하면 된다. 먼저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로움을 따르면 된다. 우리가 해야 할 일도 여러 가지가 아니다. 단지 하나이다. 매사에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 하나이다.
. 예수님께서는 우리로 그의 멍에를 메라 하시며 그의 멍에는 편하고 그의 짐은 가볍다고 덧붙여 말씀하셨다.
.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기쁨의 단순성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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