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예화 믿음이 좋았던 것인지 어리석었던 것인지.....(2)

첨부 1


순천만의 갈대(퍼온거)

          
믿음이 좋았던 것인지 어리석었던 것인지.....(2)

그 교회가 원래 그렇게 적게 모이는 교회는 아니었습니다.
전임자인 전도사님이 교회를 개척하여 많은 애를 쓰셨고, 꽤 부흥하기도 했답니다.  
그러니까 그 교회가 3, 40명 쯤 모이는 교회라는 말씀은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시골교회가 다 그렇듯(더구나 대도시 근교의), 교세가 점점 기울었던 것입니다.

한 청년의 이야기를 들으니,
자기들이 강 건너에 있는 초등학교(지금의 동명고등학교)에 다닐 때에,
그 동네에 사는 초등학생이 100명 정도는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동네 어린이들을 다 모아도 10여명 정도일 뿐이었고,
학교는 폐교가 되어 있었습니다.

주일날이 되어 예배를 드린 후 헌금을 계산해 보니,
(회계 집사님도 없어서 혼자 다해야 했지요.)
전교인이 한 헌금이 만원이 못되었습니다.
그 뒤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가장 많을 때가 일만오천원 쯤 되었습니다.

우리가 그 교회에 부임하여 첫 예배를 드린 때가 시월 첫 주였습니다.
얼마 후 추수감사주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추수감사주일날 헌금함을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시골 할머니들이 일이십 만원까지 헌금을 드렸지 않겠습니까?
“전번 전도사님이 그렇게 교육을 시켰나보네!”
제가 있는 동안 내내 그랬습니다.
일 년 치 헌금을 한꺼번에 하셨나 봅니다.

그렇게 한달이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사례비(말하자면 월급)를 챙겨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또 한 달이 지나갔습니다.
그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도 두어 달에 한번씩은 모아둔 성미는 챙겨주었습니다.
결혼하여 아이를 낳기 전이었기 때문에 달랑 두 식구였지만 그 쌀로는 턱도 없었습니다.
얼마 지나자 쌀이 바닥이 났습니다.
통장에는 잔고도 없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굶어야 할 판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함부로 헌금에 손을 댈 수도 없었지요.
그것도 고작 몇십만원에 불과했지만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릴 시험하시나 보네!”
아내와 저는 마주보며 웃었습니다.

바로 쌀이 떨어지던 날,
아직 교회에 나오지 않으시는 이웃집 할머니 한분이 머리에 무엇인가를 이고 우리집에 들어오셨습니다.
“저! 이거 말이우......우리 집에서 방아 찧었는디 잡숴 보실라우?”
그것은 쌀이었습니다. 그해에 거둔 하얀 햅쌀이었습니다.
할머니가 가시고 난 후 우리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봐요!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시잖아요!”

12월 말이 되자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아! 여보세요. 지평중앙교회지요! 저는 00교회 선교부 회계 집산데요....”
그분은 전임 전도사님이 떠나신 후 우리교회에 보낼 보조금을 가지고 계시다 이제야 전화를 한 것이었습니다.
그분이 석달치 보조금을 한꺼번에 주셔서 그해 겨울을 날 수 있었습니다.
보조금신청을 하지 않았더니 그것도 그것으로 그치고 말았지만 말입니다.
그 겨울에 그 돈은 아주 잘 썼습니다.

그 때 아내의 뱃속에는 큰 딸 성경이가 나올 때를 기다리며 엄마의 배를 톡톡 차고 있었습니다.
(다음에 계속)

          
順天바람직한敎會
<embed src="/files/attach/images/197/341/045/18877618201506683ebd24272dddad7b.gif"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