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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행복한 기다림(최용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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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허억…”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몇번이고 불러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하나님께서 내 몸안에 설계입력해 놓으신 경보시스템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빨간불이 들어와 있었다. 목이 자주쉬고, 한번 쉰 목은 예전처럼 빨리 회복되지 않았으며, 그 회복속도가 늦었다. 게다가 강의나 집회 인도로 목을 혹사하는 날엔 어김없이 성대를 비롯한 인후부에 통증이 있었다. 적어도 상식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이미 내 몸의 정상 컨디션이 무너지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알아차려야 했다. 그러나 나는 무지한 강행군을 계속하고 있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면서 1987년 3월부터 바로 시작한 ‘대구지역 월요정기찬양집회’는 1년이 채 안되어 수많은 회중이 입추의 여지없이 들어차 두시간 혹은 세시간가까이 뜨거운 열기를 내뿜으며 하나님을 찬미하는 정기집회로 자리 잡았고, 나는 5년째 인도자로서 매주 돌아오는 그 집회를 열정적으로 이끌고 있었다. 게다가 창단4년째로 접어든 음악선교단의 리더로서도 매월 20여 회의 외부 초청공연을 감당하고 있었고 수시로 강의와 세미나가 일정에 잡혀있었다. 성대를 혹사시키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상황이 이미 수년째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급기야 성대에 이상신호가 번쩍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불타는 소명감과 그릇된 헌신의식에 사로잡혀 몸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데도 스스로 브레이크를 걸 수가 없었다.

“성대결절입니다.”
“네에?”
성대가 아프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서 이비인후과 병원을 찾았을 때 나를 진찰한 의사가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전했다. 성대에 결절이 생겼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성대를 너무 무리하게 사용해서 그 섬세하고 예민한  근육조직의 모세혈관이 터지고 물혹이 생겼다는 것이다. 수술을 해야 하며, 목이 회복될 때까지는 성대를 절대사용해선 안 된다는 명령을 내렸다. 자연히 그동안 열정적으로 감당하고 있던 모든 현장사역을 내려놓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수술만 하면 한달후엔 생생하게 노래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의사선생님께서도 그러셨고 나자신도 나의 목은 수술 후 한 달만 지나면 다시 예전처럼 회복될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그러나 한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났는데도 나는 여전히 벙어리로 남아 있었다. 이유도 알 수 없었다. 그냥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작은 소리라도 내려면 극심한 통증이 성대 주변의 인후부를 찾아왔다.

귀는 멀쩡하게 들리는데 소리 내어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상황인가를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무엇보다 나의 감정을 처리하는 일에 굉장한 스트레스가 덮쳐왔다. 말을 할 수 없으니 자연히 아내를 비롯한 주위사람들과는 칠판이나 종이에 글씨를 써서 하는 필담으로 나의 의사를 전해야 했는데 내가 그 상황에 익숙해 지는데엔 1년가까이가 걸렸다. 물론 1년이 넘도록 나는 여전히 정상적으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언제쯤 목이 다시 회복될수 있을지, 아니 목이 다시 예전처럼 회복될 수 있기나 한지 조차 전혀 알수 없는 상황이 계속됨으로 인해 나의 사역과 삶에도 수많은 변화가 불가피 해졌다. 먼저 목이 회복되면 금방다시 돌아가리라던 예전의 자리(정기찬양집회인도자, 음악선교단 리더)를 내려놓지 않을 수 없었다. 말을 할 수 없으니 단원들을 이끌고 가르치는 일도 할 수 없었으므로 모든 팀 사역에서 물러나야 했다.

“아무래도 공기가 안 좋아서 목이 쉬 낫지 않으니 공기좋은 곳으로 요양을 떠나시는게….”
의사의 권유였다. 하지만 2년의 산골생활에도 불구하고 회복될 기미는 없었다.
“여보….”
아내의 목소리가 지친듯 귓가를 때렸다.
결국 우리 부부는 아예 원래 살던 대구로 돌아가지 않고 대전으로 이사를 했다. 낮선곳에서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로아야”
로아를 불렀다. 하지만 입속에서만 머물뿐… 다시 불렀다.
“로아야! 로아야!”
로아는 저 멀리로 기어가고 있었다. 아! 팔까지 휘저어 가며 불렀지만 내 목소리는 내게도 들리지 않는 것이었다.
정상적인 목소리를 잃은 지 무려 6년이 되도록 나의 성대는 예전처럼 회복되지 못했다. 4년째 접어들면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이라야 겨우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의 속삭임으로 말을 할 수 있었으나 그것도 통증으로 인해 극도로 자제를 해야 했다.
무엇보다 나를 가슴 아프게 한 것은 우리 부부가 얻은 딸아이가 이제 말을 배우는 시기를 맞이 했다는 사실이었다. 그 아이에게 아빠의 목소리를 들려줄 수 없었고, 말을 걸 수가 없었다. 그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었다. 내가 입으로 선명하게 내뱉을 수 있는 소리는 휘파람 뿐이었다.
“제발 주님! 로아에게만이라도 아빠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목을 틔워 주십시오. 평생 다른이에게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오직 로아에게만….”
하나님께서는 나를 불쌍히 보신 것일까? 딸아이가 두살로 접어들면서 나는 비로소 조금씩 소리를 내어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통증 때문에 몇마디의 말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여보! 여보!”
아내가 갑자기 울먹울먹 깬다. 무슨일이 일어났던가.
“당신이….당신이 지금 말을 하고 있어요. 계속 말을 하고 있다구요…”
그랬다. 목소리를 잃은 지 만 6년 째이던 1998년 5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목이 갑자기 좋아진 것이다. 적어도 남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다른 사람들과 한시간가량 대화라도 나눌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그때도 소리내어 찬송가를 부르는 것은 전혀 불가능했다. 하지만 말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경악할 일인가. 나의 목에서 나오는 음성을 처음 들은 주위 사람들이 소스라치게 놀라 기이하게 여겼다.
조금만 말을 많이 하면 금방 성대가 쉬어버리고 통증이 찾아와 대화를 중단해야 했지만, 그만큼 회복속도도 빨라졌다. 그러면서 성대의 기능이 점점 회복되어 8년째인 지금은 원래의 90%정도로 회복이 되었다. 한 곡정도는 통증없이 소리내어 찬송가를 부를 수도 있게 되었다. 물론 집으로 돌아올 때는 목이 거의 쉬어있지만 말이다. 그래도 감사했다. 로아를 부를 수 있어서… 이제 마음껏 아이 이름을 부를 수 있어서…

8년
길고 긴터널을 지나왔다. 지금은 이미 터널의 90% 지점을 지나고 있어 빛의 밝기가 바깥과 다름없다. 지금 정도만으로도 더 이상 바랄게 없다.
목소리를 잃은 채 기약 없는 어두움의 터널을 좌충우돌하며 해메던 초기, 나는 내인생에 불현듯이 들이닥친 그 이해할 수 없는 고난으로 인해 때때로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의 마음을 가졌다. 그토록 몸과 마음과 모든 정열을 바쳐 일구었던 사역지를 떠나야 했던 일도 가슴이 아팠고, 무엇보다 소리내어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할 수 없다는 것은 더욱 큰 고통이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정담을 나눌 수 없다는 것도 큰 고통이었다. 그런 고통을 느낄 때마다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어쩌면 일평생 말을 못하는 사람으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이 들 때면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투정을 하고 싶었다.
“주님! 대체 내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하필 왜 내게요…”
이렇게 시작한 기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달라져 갔다.
“뭔가 뜻이 있으시겠지요. 언제까지인진 모르겠지만 기다릴랍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에 나에게 그런 터널을 통과하도록 하신다는 사실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내 인생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나를 위한 그분의 섬세하고도 치밀한 배려요 섭리이다. 그것이 나를 위한 그분의 사랑의 작전이라는 것을 나는 철석같이 믿었다.
따라서 나는 내인생의 어떠한 위기나 고난 가운데서도 신약성경 로마서 8장 28절의 주님의 언약을 굳게 붙잡을 수 있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획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결국 모든일이 유익하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한동안 불편하고 고통스럽지만, 그것이 결국은 나에게 유익이 된다는 사실. 그것은 나에게 그 긴터널을 즐거운 마음으로 걸어갈 수 있는 힘과 소망을 공급해 주었다. 지난 8년간의 그 특별한 여행을 통해 앞으로도 많은 유익이 나에게 주어지겠지만 사실이미 그동안 내가 얻은 유익만 하여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나는 성장하였다. 그리고 조금씩 성숙해 왔다. 그것은 어려운 고난을 통과하면서 비로소 얻어지는 면류관이기도 하다.


나는 주님께서 무슨 정신(?)으로 스스로 십자가의 형장으로 걸어가실 수 있었을까를 많이 생각하였다. 그 분에게도 피땀을 흘리며 절규할 만큼의 갈등의 시기가 있었다. 할 수만 있다면 그 잔이 당신에게서 지나가게 해 달라고 하나님 아버지께 울부짖었다. 물론 하나님 아버지께선 그 간구를 외면하셨다. 그러나 주님께선 조금의 원망과 불평의 마음없이 홀연히 일어나 죽음의 자리로 스스로 걸어가셨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 어떻게 죽음의 길을 노래부르며 행진하실수가 있으셨을까? 세상모든 사람들이 “이제 그 길은 끝장이다”라고 굳게 믿는 그 최악의 길을 감사와 찬미로 맞을 수가 있었을까?
심장박동이 멈추고 뇌파가 정지되면서 영혼이 떠나버린 차가운 육신을 음침한 굴속에 누이고 사흘을 기다리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지금까지 인간의 역사가운데서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쩌면 생전에 쳤던 큰소리와 달리 사흘이 지나도록 자신의 시신이 부활되지 않음으로 인해 만천하에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었다. 사실 그분 자신에겐 스스로의 몸을 부활시킬 능력과 권리가 없으셨다. 모든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손에 달려있었다.
그런데도 그분 스스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신 까닭은 단 하나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바로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굳은 믿음, 굳은 신뢰 때문이었다. 하나님아버지께서 계획하시는 일에는 한 치의 오차도 없으며 하나님은 결코 실수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주님께선 굳게 믿으셨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얼마나 지신을 사랑하시는지, 그러므로 지옥의 불구덩이 가운데로 내동댕이 쳐지더라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결코 자신을 버리지 않으실 것을 그분은 굳게 믿으셨다. 그리고 자신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 얻어질 엄청난 ‘유익’에 대해 주님께선 확신하셨다. 그것은 모든 인류를 위한 위대한 유익인 동시에 자신에게도 말로 다할 수 없는 큰 영광을 가져다주는 길이라는 것을 굳게 믿으셨다. 그리고 묵묵히 그 처절한 고난과 죽음의 터널속으로 걸어 들어가셨다.
그분에게 있어서나 모든 인류에게 있어 사흘은 너무도 긴 시간이었으리라. 이미 제자들은 혼비백산하여 하루도 견디지 못하고 다 도망쳐 버렸다. 아무도 예수의 부활을 믿는 자는 없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예수님께선 철저히 혼자이셨다.
사흘째 이른 새벽, 마침내 무덤의 문이 열렸다. 문 밖에는 그 어느 누구도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와 하늘나라의 천군천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부활을 축하하였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셨고, 이세상의 모든 인류에겐 구원의 대로가 열렸다.
주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죽음 이후의 새로운 세계에 대한 소망과 확신을 심어준다. 우리도 주님처럼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하게 될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우리 인생에 일어나는 수많은  크고 작은 역경과 고난가운데서 우리가 절망치 않고 찬미와 감사로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이유를 가르쳐 주기도 한다. 지금의 고통과 쓰라림이 죽음을 방불케 하는 것일지라도, 아니 바로 죽음 그 자체일지라도 우리는 낙망할 이유가 없다. 그 다음에 오는 유익과 영광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었던, 크고 위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받는 고난은 앞으로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전혀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로마서8:18)]

어떤 경우에라도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믿으라. 그분의 성품과 인격을 믿으라. 그외엔 도리가 없다.

-낮은울타리 2000년 4월 (최용덕)

* 최용덕간사니~임. 제가 쓴 글로, 제가 곤고할때에 제가 오히려 큰은혜를 받고 도전을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최간사님도 아직 어려운 시기 이시죠? 이 글도 최간사님께 위로와 도전을 주는 글이 되길 소망합니다. 최간사님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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