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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성령세례에 대한 주장 3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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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자에 이슈로 떠오르는 논쟁 중의 하나가 성령론이 아닌가 생각 합니다.
성령론에 대한 입장 중 크게 세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오순절 주의의 가르침이고, 둘째는 개혁주의 입장중 중도적 노선이며 셋째는 정통적인 개혁주의 입장이 있습니다.
첫째, 오순절주의(일명 순복음)에서는 성령세례가 신비적인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예컨대 이들은 방언, 병고침등과 같은 특별한 은사를 성령세례의 모습으로 봅니다.
둘째,  개혁주의 중에서도 중도적 입장을 취하는 노선은 성령세례를 특별한 체험으로 봅니다. 오순절파가 은사에 강조점을 둔다면 이들은 그것을 포함한 포괄적인 체험에 강조점을 둡니다. 그리하여 성령세례는 반복적이면서도 지속적으로 받아야한다고 주장합니다.(로이드죤스목사, 헤르만 바빙크, 차영배)
셋째, 정통적 개혁주의 입장(일명 장로교)으로 성령세례는 중생하여 구원받는 체험으로써 반복적이지 않고 신자의 일생 중 한 번 받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충만하신 역사는 반복적이고 지속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아브라함 카이퍼, 서철원)

이 세가지 입장 중 저는 세번째 주장에 동의합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이 신자의 삶속에 강력하게 내주하셔서 그를 지배하고 그의 전 영역에서 역사하실 때 성령의 은사는 물론이요 성령의 의도하심의 근본 목적인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신자의 삶속에 주관적으로 역사하여 신비한 능력을 나타나게 된다 할지라도 그의 삶에 열매(사랑)가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신비적인 요소가 있고 초월적 요소가 있지만 신비주의 종교는 아닙니다. 성령님은 분명히 살아서 역사하십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성도를 성도되게 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게 하고 끝내는 열매맺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자랑이나 교만으로 가지 않습니다.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고 해서 그것을 공론화시키고 객관화시키는 것은 나쁜짖입니다. 더 겸손해야 하며 더 낮아져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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