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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믿음이 좋았던 것인지 어리석었던 것인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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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다원

          
믿음이 좋았던 것인지 어리석었던 것인지.....(5)

그 교회에 시월 첫 주에 부임했기 때문에 곧 가을이 되었습니다.
교회당 옆으로 은행나무 몇 그루와 커다란 플라타너스나무 몇 그루가 있었습니다.
그 나무들에 단풍이 아름답게 들기 시작하더니,
낙엽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낙엽이 얼마나 많았던지, 낙엽치우는 일은 상당한 일거리가 되었습니다.
아침이면 날마다, 날마다 낙엽을 치워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은 제게 힘든 일이 아니라, 꽤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이 낙엽을 모아 어떻게 처리한담?”
제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 교회의 사택에는 화장실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교회 마당 한 쪽에 있는 화장실을 사용해야 했는데,
참 그 화장실이 볼만했습니다.
대충 가건물로 되어 있는 화장실인데 완전 재래식이었습니다.
(그것을 직통식이라고 하지요. 직통으로 떨어지니까! 혹자는 ‘푸세식’이라고도 한답니다. 퍼내야 하니까!)
겨울에 앉아 있으면 엉덩이가 시려서 대충 대충, 속히 일을 치러야 했습니다.
아내는 그 화장실이 무서워서 결국 변비가 걸리고 말았지 뭡니까?
그래도 나중에 큰 딸은 엄마 화장실 가는데도 따라가려고 해서,
아내는 할 수 없이 아이를 안고 곡예 하듯이 볼일을 보곤 했답니다.

그런데 처음 가서 보니 이거 대단했습니다.
색깔도 참 가지 각색인 것들이 가득 차서 철철 넘칠 정도였습니다.
거기다가 무슨 생명체가 그렇게 많은지 말이죠.
굼벵이도 아닌 것이 배추벌레도 아닌 것이 부지런히 위를 향해 기어오르고 있었습니다.
마치 트리나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에 나온 애벌레처럼,
정상을 향해, 정상을 향해 경쟁적으로 기어오르고 있었습니다.
“햐! 이것들, 높아지려는 것은 사람하고 똑같네!”
“집사님! 화장실은 어쩌지요!”
할머니집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차를 불러서 퍼야 하는디요잉. 어짤께라? 다른 집에 오면 함께 퍼야 허는디.”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그래요! 그럼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리고는 며칠 후 그 푸리딩딩한 색깔의 출렁거리는 것들을 부지런히 퍼 날라
교회당 옆의 밭에 낙엽을 모아둔 곳에 부었습니다.
낙엽과 그 물건을 샌드위치 모양으로 번갈아 가며 붓고, 쌓았습니다.
나중에 와서 보신 할머니집사님들이 몸 둘 바를 몰라 하셨습니다.
“워메! 이거 워쩐다요! 냄새나는디. 차를 불러서 푸잔께로!”
“그것은 돈이 안 들어갑니까? 조금만 수고하면 되지요. 뭐!”
나중에 그것은 교회당 옆의 텃밭에 뿌릴 좋은 거름이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지요. “돈은 똥과 같은 것이여! 모아두면 썩어 냄새가 난다니께! 그게 논밭에 좍 뿌려지면 오곡백과 풍성한 결실을 거둘 수 있게 허는 건디.....”)

그 후 그 교회를 사임하고 큰 교회의 부목사를 하면서의 일입니다.
가끔 교회당의 후미진 곳에 볼 일을 보고 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그것을 발견해서 몇 번 치운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는 왜 그렇게 그 물건이 더럽게 보이는지 말입니다.
그것을 치우면서 속이 뒤틀리고 메슥거렸습니다.
“거참 이상하네. 그전에는 그보다 더한 것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왠 일일까?”
제 자신도 이해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두어 번은 그 물건을 보고도 모른척했습니다.
저 말고도 그것을 치울 수 있는 사찰 집사님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말입니다.
생각해 보니 저는 참 한심스러운 놈입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영성이 높아지기는커녕 이렇게 추락하고 있으니......

그러다 문득 ‘내 자신의 어려웠던 과거도 이해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타인의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목회자라고 할지라도 성도의 아픔을 다 싸매어 주지는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참된 치유자이신 예수님 앞으로 모든 사람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 목회자의 사명이라고 말입니다.

세상에 있는 누구도 우리의 모든 아픔을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오직 우리보다도 우리를 더 잘 알고 계시는 주님만이 우리를 이해하십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자기를 몰라준다고 화낼 것도 아파할 것도 없습니다.
당연한 일이니까요.
사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주님, 예수님께로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다음에 계속)


順天바람직한敎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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