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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황석영의 '손님'을 읽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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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반세기의 아픔이 담긴, 아니 통일 조국을 내다보며 그리스도인으로서 통일을 위하여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황석영씨의 "손님"을 읽으면서 막힌담을 허시고 둘을 하나로 만드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이 추구해야 할 역사적 사명에 대하여 곰곰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이책에서 저자는 기독교와 맑스주의를 손님으로 규정하면서 손님의 집필 배경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기독교와 맑스주의는 식민지와 분단을 거치는 동안에 우리가 자생적인 근대화를 이루지 못하고 타의에 의하여 지니게 된 모더니티라고 할수 있다.
전통시대의 계급적 유산이 남도에 비해 희박했던 북선 지방은 이 두가지 관념을 개화로 열렬하게 받아 들였던 셈이다.

이를테면 하나의 뿌리를 가진 두개의 가지였다.
천연두를 西病(서병)으로 파악하고 이를 막아내고자 했던 중세의 조선 민중들이 '마마' 또는 '손님'이라 부르면서 '손님굿'이라는 무속의 한 형식을 만들어낸 것에 착안해서 나는 이들 기독교와 맑스주의를 손님으로 규정했다."

소설 "손님"은 민족전쟁의 와중에서 신앙과 이념의 극한 대립이 빚어낸 아픔을
망자(亡者)들과의 대화를 통하여 절절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러한 흐름가운데 주인공인 류요섭목사의 외삼촌인 안성만의 삶을 보면 진정한 신앙인의 삶과 신실함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 줍니다.

요섭의 외삼촌은 전쟁중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남게 되었고, 이후 그는 인민 협동 농장의 책임자로 근무하게 되었는데, 반동의 가족으로 낙인찍히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신실함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황주 철공장에 나가게 되었다. 인근 군에서 온 장정들과 일제때부터 공장 구내에 지어 놓은 낡은 판자 건물에 수용되었는데 가운데 통로를 내고 양쪽으로 나무 침상을 놓은 숙소였다.
현장에서 우리는 주로 숙련공들의 보조일을 했다.

화차에서 내려진 철광석을 골라내어 분쇄기에 갈고 컨벤이어벨트로 운반하는 일이 우리 잡부들 차례였다.
하루종일 싣고 운반하는 일을 하다보면 어깨가 떨어져나가는 듯했고 손은 찢어지고 터진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공장사람말고 우리를 인수받은 작업 감독이 따로 있었는데 그가 시당에서 나온 지도원이라고 했다.
그는 젊은 조장 두 사람과 함께 우리 숙소까지 관리하고 있었다.
나는 주말인 토요일까지 기다렸다가 숙소 건너편에 있는 작업반으로 지도원을 찾아갔다.

머 좀 부탁드릴라구 왔습네다.
나보다 네댓살 많아 보이는 지도원이 부드러운 얼굴로 물었다.
무슨 일입네까?
내일이 일요일이디요. 난 일요일에넌 작업을 못하갔습네다.
왜 어디 아프오?

아니 그런 거이 아니라..... 주일이니깐 교회를 나가야 되갔시오.
메라구. 교회? 의무부역을 나와선 일은 안하구 교회를 나가겠다 이거요?
예. 교인언 주일얼 지케야 되니까니.

지도원은 부드러운 얼굴이 일그러지다가 어이가 없는지 옆의 책상앞에 앉은 젊은 조장을 돌아보며 픽 웃었다. 젊은 친구가 눈을 날카롭게 치뜨고 내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외쳤다.
이봐. 의무부역을 어기문 고발을 해서 처벌을 받게 되어 있소.

나는 고지식하게 그에게 차분히 말했다.
우리 공화국으 이십개 정강 삼조와 오조에 엄연히 신앙으 자유가 보장돼 있는 걸루 아는데요. 나넌 농사럴 지어선 현물세두 꼬박 바치구 누구에게 해럴 끼친 일두 없시다. 지도원이 어이가 없는지 입을 벌리고 내 말을 다 듣고 앉았더니, 다시 참을성있게 웃는 얼굴로 돌아갔다.

교인이라구 해서 남들 다 일하는 시간에 혼자 빠제서야 되갔소.
부역이 다 끝난 댐에 집으루 돌아가 기때에 교회엘 나가문 되는 거요.
나는 더이상 대꾸 않고 그대로 돌아왔다. 숙소에 가서 저녁을 먹고 취침시간이 되어 모두들 침상에 자리를 깔고 누웠는데, 혹시 잠이 들어버릴까봐 나는 옷을 벗지도 않고 아래위 작업복에 냄새나는 양말까지 신은 채로 담요만 덮고 실눈을 뜨고 잠든 척 했다.

그렇게 자리에 누워 새벽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자니, 하루 종일을 고된 작업에 시달린 몸이라 물먹은 솜처럼 천근만근 무거워져서 마치 밑바닥 없는 아득한 잠 속으로 가라앉아버릴 것만 같았다.
주위에서는 코를 골지 않나 잠꼬대를 하지 않나, 실내의 희미한 전등도 꺼졌지,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창밖에 먼동이 트는지 산자락의 윤곽이 선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살그머니 일어나서 작업화를 미처 신지도 못하고 발끝만 끼운 채로 숙소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시오리 길을 달려서 교회를 찾아 갔는데 새벽기도회 시간이라 교인은 열 사람이 채 못되었지만 목사님은 나와 있었다.

주일예배를 보고 목사님댁에서 점심 얻어먹고 다시 교회에 앉아 기도 올리고 저녁예배까지 보고 밤 열시에야 돌아오니까. 같은 숙소의 부역 나온 시골사람들이 서로 걱정을 해주었다.
겉으로야 종교 믿는 걸 상관 않는다고 하지만 이 사람들이 당신을 어떻게 보겠느냐. 그렇지 않아도 기독교인이라면 반동으로 보는 세상인데 당신 그러다 아오지 간다. 죽은 다음에 천당 가면 무슨 소용이냐. 말들이 많았지만 나는 그저 못 들은체 오랜만에 편안하게 잠들었다.

이튿날 작업장에 나갔더니 지도원 아바이가 나를 찾았다.
그는 화가 잔뜩 난 얼굴로 따라오라고 하면서 나를 작업반 사무실로 데리고 갔다. 지도원은 대뜸 자기 책상 앞자리에 앉으라고 해놓고 인원 명부를 들추기 시작했다.

안성만 동무 신천서 왔구만. 아부지가 목사구, 자작농이구, 지난번에 투표두 했구만. 동무는 지금 의무부역이 왜 있는 줄 아오?
새루 건설된 현장언 물론이구 일제 때 돌아가던 공장두 다 가동되디 않으니깐 생산을 다그치기 위해서입네다.
잘 아는구만요. 긴데 종교를 빙자해서 기렇게 사보따주를 하면 우리는 고발조치를 할 수밖에 없소.

아닙네다. 내가 교회엘 나가 주일얼 지키는 대신에 사흘 더 노역얼 해서라두
의무부역언 채우겟디라레.
여게서 특별대우는 없소. 더구나 교회는 더욱 안되오. 당신을 반동이라구 비판하는 인민들두 많소.

나는 그 다음 주일에도 새벽에 공장 숙소를 빠져나와 교회에서 하루 종일을 보내고 밤에 돌아왔다. 지난주처럼 이번에도  지도원에게 불려갔다.
그는 책상을 치면서 호통을 내질렀다.
보자보자 하니까 이거 무서운 거이 없구만. 동무는 정말 새로운 시대의 쓰레기요. 종교 아편장이야! 당신에게 어떤 불이익이 돌아가드라두 후회하지 말기요.

나는 마지막 주중에 어디선가 나타나서 나를 잡아갈 것 같은 생각도 들었지만 내가 국가를 위태롭게 할 정도로 잘못을 했다고는 여기지 않았고 그저 묵묵히 일만 열심히 했다.
토요일이 되도록 아무 소식이 없더니 지도원이 나를 불렀다.
그는 나를 데리고 구내 매점의 구석자리로 가서 국수를 시켜주며 첫날처럼 편안한 얼굴로 말했다.

안동무,일요일이 다시 돌아왔구만. 또 규칙을 어기고 무단외출을 할 거요?
그러니께.... 허가를 해주시디오.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껄껄 웃고는 나의 어깨를 두드렸다.
좋소 내일은 마음놓구 교회에 갔다 오오.
정말입니까?

나는 당신같은 인민은 진짜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구 생각하오.
그동안 안동무가 작업하는 태도나 숙소에서 동무들과 생활하는 것을 우리가 시종 관찰하였는데 참 성실한 사람이오.
자기 맡은 작업량뿐만 아니라 모자라면 남의 일까지 해치우고 숙소에 돌아가서두 아픈 사람 빨래까지 해주었다면서요?

별일 아닙네다.내일까디 부역기간이 만료되디만 난 사흘얼 빠졌시니깨 여게 남가시오. 사흘 작업량 채우구 집에 가갔습네다.
그래서 마지막 날에는 콧노래로 찬송가를 부르며 버젓이 교회에 나갔다.
남들은 모두들 트럭을 타고 읍내로 나가는데 나만 공장에 남아 새로운 일감이 주어지기를 기다렸다.

모두를 보내놓고 지도원이 나를 불렀다.
당신은 그 종교만 빼놓은다문 참으로 인민을 위해서 일할 동무요.
그러니 잔업은 하지 말구 그냥 돌아가시오. 내가 군당에다 잘 얘기해 놓갔소."
(손님, 황석영지음, 창작과비평사, 178-182쪽)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내용입니다.
내 삶의 자리에서, 나를 가장 잘 아는 이웃들에게 믿는이로서 본을 보일 수 있는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합니다.

여러분 한명 한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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