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예화 평신도 선교사론

첨부 1


          
       평신도 선교사론 (주누가 선교사)
          
   전세계 60억 인구 중 기독교로 분류되는 사람들은 약 20억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 통계에는 가톨릭(11억), 정교회(2.2억), 유색 인종 토착 기독교(3.5억), 성공회(0.75억) 그리고 기독교를 빗대는 모든 이단들까지도 포함된다. 이중 개신교 인구는 오직 3억 2천만 명에 불과할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복음에서 소외되어 있다.

  전문인 선교의 필요성은 점점 커진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복음을 거부하는 창의적 접근 지역(선교 접근 제한 지역)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21세기 선교 환경을 보면 이런 추세는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타종교의 근본주의 세력화 운동, 포스트모더니즘의 광범위한 영향력, 그리고 미래학자들이 예상하는 문명의 충돌의 시대! 이러한 시대적 조류를 보며 창의적 접근 지역이 더욱 급격히 증가할 것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현재 선교 접근 제한 국가의 수는 약 130개국, 2030년이 되면 180개국에 이를 것이라는 자료들이 이미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렇듯 복음에 대해 문을 닫은 국가와 체제는 존재해도, 하나님께서 문을 닫으신 선교지역은 어디에도 없다. 선교지 입국이 어려우면 목회자 중심의 전통적 선교 패턴을 탈피하여 선교지 침투 가능한 인력을 투입시키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 아래 세계 선교 운동 가운데 전세계적으로 급격히 확산되고 있는 것이 전문인 선교(Tentmaker mission)이다.

  전문인 선교사에 대한 고정관념은 깨져야
대개의 사람들은 전문인 선교사에 대해 맘놓고 사역을 맡기기엔 뭔가 부족하고 미흡하다는 생각을 감추지 않는다. 이러한 의식 속에는 '전문인 선교=평신도선교' 라는 오해가 존재한다. 전문인 선교에 평신도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목회자 출신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전문인 선교사는 전통적 선교사, 즉 목사 선교사에 대한 상대적 개념이 아니다. 전문인 선교는 선교현장의 접근을 위한 전략적 관점으로 이해돼야 한다.

종교 비자를 받기 어려운 창의적 접근 지역에서 일하는 선교사라면 누구든지 전문인 사역자로 신분을 확보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창의적 접근 지역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는 목회자든 평신도든 전문인 선교사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렇더라도 신학만 공부한 목회자 출신은 직업적 전문성이 없어서 신분 확보가 곤란하지 않느냐는 질문이 나올 수 있겠다.

'전문인'이란 용어는 별 것이 아니다. 선교지에서 뭔가 법적으로 인정받는 세속신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 특별한 전문 직종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이미 우리는 '대중 전문인 시대에 살고 있다. 파출부 아줌마는 가정관리사, 보험 아줌마는 생활설계사. 간호 보조원은 간호조무사라는 법적 호칭이 있듯이 특별하지 않아도 충실하게 뭔가 하면 전문인으로 인정되는 시대이다.

그리고 직업적 전문성도 팀의 '직업적 전문성'을 의미하지 꼭 개인의 전문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즉 자신이 속한 팀이 직업적 전문성을 확보하면 개인의 전문 직업이 없어도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컴퓨터 학원으로 선교 베이스를 구축했다면, 컴퓨터 전문가 외에 컴맹인 목회자가 그곳에서 원장이나 사무장의 신분으로 비자를 얻을 수 있다.

  평신도 전문인 선교사는 격려받아야
이상의 설명으로 '전문인 선교=평신도 선교' 라는 고정관념은 깨어졌으리라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인 선교사가 뭔가 부족하고 미흡하다는 생각은 해결되지 않는다. 이것은 목회자 전문인 선교사에 대한 불안이 아니라 평신도 전문인 선교사에 대한 불안일 것이다. 불안하다고 기독인구의 98%에 이르는 평신도 자원의 선교 동원을 주저한다면 성경에 흐르는 만인 선교사직론을 거스르는 것이요, 세계선교는 불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평신도라는 신분이 제한의 요소가 되어서도 안되고, 될 수도 없다. 선교 현장을 감당할 만한 자질과 훈련이 그 문제의 관건이다.

전문인 선교사는 전통적 선교사보다 열등한 사역자가 아니다. 오히려 더 엄격한 자질이 요구된다. 복음을 제한하고 배척하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사역적 전문성, 직업적 전문성 그리고 지역적 전문성도 필요하다. 결국 '평신도' 라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떤 평신도냐'가 문제인 것이다. 지역 교회와 해외 선교 단체가 파송 과정을 합리적으로 강화하여 준비된 사역자를 평신도이든, 목회자이든 파송하면 되는 것이다. 목회자니까 괜찮고 평신도니까 부족하다는 고정관념은 버려야 할 때가 되었다. 그리고 평신도라도 파송한 후에는 온전한 선교사로서 인정하고 기도와 신뢰를 계속해서 보내야 한다.

불행하게도 아직 일부이긴 하지만 평신도 전문인 선교사에게 도전이 있다. '평신도가 무슨 선교사냐 !"라는 무지한 저항이다. 그리고 사역이 활성화되면 평신도가 설교도 하고 교회 개척도 한다고 쏟아지는 비난이다. 사실 이것은 바울 사역팀이 이미 받았던 성경적인(?) 비난이다. 그들은 로마 전역을 횡단하며 사회적 침투력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장막(텐트)을 만들며 동시에 복음을 전하므로 사역의 효율성을 배가시켰다.

하지만 베드로와 동류가 아니라는 점에서 약점을 가지고 있던 바울은 이러한 세속적인 업에 종사함으로써 '당신도 사도냐!"라는 거센 도전에 직면해야 했다. 그러나 바울은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 (고전 9:22)이라고 영혼에 대한 열정을 말하며 오직 열매로 사도임을 증명하였다. 이것은 지금도 일부에서 좋은 결과를 나타내고 있는 평신도 전문인 선교사에게 "네가 안수를 받았느냐! "고 비난하는 것과 유사한 모습이다. 성경과 교회사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안수(ordination)를 통해서 일하시기보다는 기름 부음(anointment)을 통해 일하시기를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강력히 권고하고 있다.

   목회자 전문인 사역자도 격려받아야 한다
그리고 목회자 전문인 선교사에게도 어려움은 올 수 있다. "어떻게 안수 받은 자가 세속 직업에 종사할 수 있으며, 어떻게 목사가 하나님이 위임한 목사 신분을 숨길 수 있느냐!"는 비난이다. 바울은 복음을 위해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다. 목회자라는 신분은 복음을 위한 것이다. 그것이 복음에 제한이 된다면 그 직분을 버릴 용기도 있어야 한다. 복음을 거부하는 선교 접근 제한 지역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목회자의 신분을 잠시 유보해 놓은 이 분들이야말로 진짜 목회자요 선교사이다. 우리가 전통적인 방법을 고수하면서 선교지 문이 닫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선교학적인 면에서 뿐 아니라 신학적 지식의 빈곤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결국 지상 명령을 제한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