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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삼손에게서 보는 우리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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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년 전 아이들이 "바보, 바보, 바보야…"하는 노래를 부르고 다니길래 요새 아이들끼리는 아마 그런 식으로 서로 놀리는가 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유행가 가사여서 피식 웃은 적이 있다. 나의 청소년 시절에는 '나는 못난이'라는 노래가 한참 유행을 했는데, 지금은 아예 바보라는 단어가 유행가에서도 아주 쉽게 나올 수 있는 모양이다. 핑핑 돌아가는 초고속 인터넷 시대라서 오히려 자신이 발전하는 사회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불안감에 더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인가, 정보의 양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데 자기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또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앞으로 무슨 함정이 기다리고 있는지를 몰라서 생기는 공포감은 더욱 큰 것 같다.

   과거처럼 문명이 덜 발전된 농경사회나 유목사회도 물론 나름대로 여러가지 정신질환을 유발하는 요소들을 갖고 있었지만, 산업이 발달할수록 보다 다양한 정신질환이 발생한다는 이론은 이미 정설이다시피 되어 있다. 쉽게 말해 세상이 발전하면 할수록 우리가 '광인'이나 '바보' 취급을 당할 가능성은 훨씬 많다는 얘기이다. 이런 시대에 성경 속 인물 중 힘은 가장 셌지만 동시에 가장 미련했던 삼손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를 비웃게 되기보다는 오히려 안타까운 기분에 잠기게 된다.

   성경에 나오는 '3대 바보'를 꼽으라면, 아마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아 먹은 에서, 여자의 유혹에 거듭거듭 넘어가 두 눈을 잃는 고통을 받고 결국 죽음에 이른 삼손, 그리고 예수님을 판 유다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 중 삼손 이야기는 인간의 본능과 남성성, 여성성, 또한 집단과 개인의 갈등 등에 대한 복합적인 접근 속에서 우리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고 미련한가를 명쾌하게 밝히고 있다.
  삼손은 태어날 때부터 여러가지 금기사항을 지니고 있었다.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 즉 나실인이기 때문에 술을 마셔도 안됐고, 부정한 것을 만져도 안됐으며, 머리털을 잘라도 안됐다. 그러나 그 대신 삼손은 하나님이 주신 큰 힘을 가진 엄청난 장사였다. 바로 여기서부터 삼손의 비극은 시작된다.

   '육체적 힘'이란 정신적 욕망의 상징이다. 남달리 강한 힘을 가진 삼손에게 금기사항이 많이 주어질수록 그가 겪어야 할 정신적 긴장과 갈등, 반항심 등은 가해질 수 밖에 없다. 그가 나이가 들면서 곧장 낯선 곳으로 떠나 외지인인 딤나여자의 외모를 보고 결혼을 결정하여 부모에게 간청하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그런 억압과 간섭들로부터의 독립선언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부모로부터 떠나 홀로 선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도중에 사자가 나타나 그의 생명을 위협한다. 하지만 그는 사자를 찢어 죽인다. 이는 고난을 통해 시험 받는 성인식의 한 부분으로 파악된다. 자신의 소명을 완성하며 한 사람의 성인으로서 제 몫을 다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무수한 난관을 거치면서 강해져야 한다. 일단 삼손은 자신의 전리품인 사자의 시체를 다시 찾는다. 자신의 승리에 거만해진 삼손은 시체에 생긴 꿀을 보고 좋아하면서 죽은 시체를 만지거나 접촉하면 안된다는 나실인의 금기를 깨게 된다. 뿐만 아니라 그 꿀을 아주 맛있게 먹고는 의기양양하게 부모에게 갖다 주기까지 한다.

   이렇게 자신의 능력을 과신한 삼손은 딤나여인의 집에 혼자 가서는 보무도 당당하게 낯선 이들 사이에서 홀로 혼인잔치를 치른다. 보나마나, 젊은 혈기에 낯선 이방인의 마을에서 마셔서는 안될 술에 취하게 되었을 것이고, 취한 객기 끝에 잘난 척 깨나 하였을 것이다. 내친 김에 자신의 현명함을 자랑하며 수수께끼를 낸다.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힘센 자에게서 단 것이 나오는데, 그것이 무엇인가?"(사사기 14:14)하는 내용이다.

   언뜻 이 부분은 오이디푸스가 맞춰낸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연상케 한다. '수수께끼'는 어린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놀이로서 자신의 지혜를 겨루기 위한 하나의 도구가 된다. 남들이 모르는 내용을 자신만은 알고 있다는 식의 이런 유치한 뻐김은 어른의 세계에서도 곧잘 관찰된다. 특히 정보화사회에서는 '지식'이 하나의 무기와도 같아, 상대적으로 많은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을 깔보고 무시하면서 스스로의 지식을 과시하기도 한다. 삼손 역시 이렇게 거만한 태도로 딤나 사람들을 시험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삼손은 거꾸로 제 꾀에 제가 넘어가 그 비밀을 아내에게 말해 버려, 오히려 역공을 당해 패배하고 만다. 분노한 삼손은 아내를 버리고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

   이 때 삼손은 '개성화'의 한 과정에서 실패한 후 일단 후퇴하여 유년시절의 자신으로 돌아가는 셈이다. 그러나 삼손은 아름다운 아내를 잊지 못하여 선물을 가지고 다시 장인을 찾게 된다. 하지만 아내는 이미 다른 남자의 여자가 되어 있다. 이에 분노한 삼손은 블레셋 사람의 포도원과 농원을 태워버리고, 이 사실을 알게 된 블레셋 사람들은 딤나여인과 그 일족을 모두 불태워 죽인다. 이를 안 삼손은 또다시 나귀의 턱뼈로 블레셋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죽인다(사사기 15:14~17). 흡사 무협지의 한 장면과도 같은 피비린내 나는 복수의 혈전이 벌어진 것이다.

   이 때 삼손이나 블레셋 사람들의 행동은 미숙한 남성성인 폭력성, 충동성, 복수심, 자기중심적 사고 등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사람들 중에는 특히 약한 사람에게 더욱 강한 부류가 있다. 예컨대 아내를 쥐 잡듯 잡으면서 윽박지르거나 구타한다든지, 또는 어린 자녀들을 정신적 육체적으로 학대하기도 한다. 이들은 스스로 엄한 아버지, 혹은 강한 남편으로 간주하면서 으쓱대는 기분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미숙하고 공허하기 짝이 없는 정신세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가학의 대상인 자녀들이나 아내에게 병적으로 의존하고 집착하는데, 바로 이런 심리적인 취약성 때문에 더욱 강한 척하고 권력을 휘두르려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힘센 장사 삼손은 실제로는 이런 미성숙함 때문에 번번이 함정에 빠지게 되었던 것이다. 딤나여인과의 결혼생활에 실패한 삼손은, 이제는 좀 현명한 사사로서 제자리를 잡아주면 좋으련만, 이방여자 들릴라를 또다시 사랑하게 됨으로서 결국 수많은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물론 이를 하나님의 힘을 드러내기 위한 순교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미성숙함으로 인한 '개성화의 실패'라고 보면 훨씬 더 이해가 빠르지 않을까.

   오래된 헐리우드 영화 '삼손과 들릴라'를 본 기억이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들릴라는 남자를 철저하게 파괴시킨 요부의 이미지로 사람들 마음에 각인되어 있다. 특히 들릴라에게 배반 당하고 눈까지 뽑힌 삼손의 비참한 생은, 여자에게 유혹 당해 눈이 먼 남자들의 불행에 관한 하나의 경종으로 예시되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을 다시 읽어보면, 들릴라는 단지 자기 부족의 남자들에게 이용당한 채 자신의 행복을 희생해야 했던 불행한 여자일 뿐이고, 삼손 역시 부족과 부족의 싸움에서 희생 당한 가련한 남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마치 우리나라에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이야기를 보는 것 같다. 물론 이 두 사건을 아득한 과거에 있었던 부족간의 갈등으로 인한 젊은이들의 희생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지금도 얼마든지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가족 내 갈등으로 파악해 보면 훨씬 쉽게 이해될 수도 있다. 즉 혼인 후에도 자신의 본가와 적절한 분리나 개성화를 이루지 못한 채, 문제가 있으면 친정이나 본가로 달려가 자녀로서의 역할만 고집하는 아들, 또는 부부간에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부모에게까지 확대 시켜 일을 더욱 꼬이게 만들어 마침내 파경에 이르는 미숙한 젊은 부부들은 삼손과 딤나여인 혹은 들릴라 이야기의 중심 모티브인 '정신적 독립'에 실패한 셈이다.

   글의 처음에 삼손을 '3대 바보 중의 하나'라고 표현은 했지만, 그러나 나 역시 삼손보다 현명하다고는 결코 생각지 않는다. 아니, 그 우둔함에 더하여 비겁함까지 갖추고 있으니, 사실 삼손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자기를 즐겁게 하는 상대에게 유혹 당해, 눈 먼 노예의 비참한 생활을 해야 했던 삼손은, 그리 길지 않은 인생 동안 무수히 내린 자신의 우둔한 결정들 때문에 괴로워 하면서 남만 원망하는 우리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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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케리니 플륫 5중주 제4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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