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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그 앙증맞은 십자가 목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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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앙증맞은 십자가 목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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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기훈 집사


아내는 처녀 시절 자주색 바탕에 검정 줄무늬가 있는 투피스 양장을 즐겨 입었다. 멀리서도 그녀가 입은 그 옷은 되우 우아해 보였다. 더구나 그녀의 목에 걸린 황금빛 십자가 목걸이는 그녀의 반짝이는 눈빛보다 먼저 내 눈에 들어찼던 것. 그렇다고 내가 황금에 눈이 어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녀와 십자가 목걸이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도무지 내 몸에 어떤 장식물을 치장하는 일에 서툴다. 아니 기피하고 있다는 표현이 더 솔직한 입장이다. 직업이 제복을 입고 근무하는 관리(官吏)이다 보니 명찰이며 계급장이며, 가슴에 반짝이는 흉장을 달고 다니는 일이 여간 거북하게 느껴지는 게 아니다. 하기야 까까머리 중고등학교 시절, 검정 교복에 목을 호크로 채워야 하는 그 억압(?)에 벗어날 즈음 또 다시 군복무로 푸른 전투복을 입어야만 했고 개구리복이라 일컫던 예비군복을 받고 좋아하던 것도 잠시, 이번엔 평생직장이 되어 버린 교도관으로 그 제복의 틀에서 삼십 여 년  못 벗어난 꼴이니 질릴 만도 하다. 게다가 머리에 쓰는 제모(制帽)는 얼마나 무거운가?

그래서 그런 것이었을까? 결혼 예물로 받은 시계는 고작 일년도 못 가 잃어 버렸고 반지도 신혼 여행 때 잠시 끼워 본 일 외에는 어느 서랍 속에 처 박혀서 무심한 주인을 원망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몸에 치장하는 장식물만 꺼릴 뿐 이것저것 소품들을 모아두길 좋아하고 때로 그런 걸 꺼내보는 즐거움도 찾고 있으니 모순이라면 모순이다. 그 중에 하나는 책을 살 때마다 거기 명구(名句)가 쓰여진 책갈피(끼우개)인데 적지 않은 분량을 모았다.

또한 내게는 애지중지하는 십자가 목걸이가 두 개 있다. 물론 아내 것은 빼고 말이다. 하나는 몇 해전 극동방송, '굿뉴스'라는 프로에서 장기수(長期囚)를 상대로 발행하는 내 편지사역이 전해졌는데 담당 피디가 그 프로그램 1주년 기념 파티에 나를 초대했고 진행자인 다일공동체 최일도 목사님은 자신의 목에 걸고 있었던 통가죽 십자가 목걸이를 선뜻 내게 걸어 주었던 것이다. 사실 나는 그 프로에 소개되는 걸 한사코 마다했었다. 그럼에도 그냥 뉴스로만 취급한다고 해서 자의반 타의반이 된 셈이었지만 그때 받은 이 통가죽 십자가 목걸이는 거실 벽 거울 곁에 걸어 두고 자주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십자가는 과연 내게 무엇일까?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낯설지도 두렵지도 않은, 오히려 친근하게 느껴지는 물체임이 분명한데... 따지고 보면 모든 십자가는 결코 친숙할 수 없는, 참혹하고 두렵기만 형구(刑具)이다. 그러고보니 내게 십자가에 얽힌 또 다른 간증이 생각난다. 오래 전 집안에 큰 당숙모가 지병으로 병석에 누워 계셨었다. 완고한 성품이신지라 식구들도 병구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럼에도 시급한 것은 임종하시기 전에 누구라도 나서서 예수님을 영접시켜야만 했는데 그 일 또한 선뜻 나서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은 당질(堂姪)인 내가 나서게 되었다.

평생 교회에 한번도 나가신 적이 없는 데다가 건강은 극도로 악화된 상태였고 더구나 장손 집안의 맏며느리여서 유교적 전통이 몸에 밴 그 어른에게 어떻게 예수님을 소개하고 영접시켜야 할지? 큰 고민에 빠졌지만 이미 믿음이 돈독해지신 다른 당숙모들과 집안 식구들의 기도 지원에 힘입어 나는 담대하게 나섰다. 그 떄 내게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서랍 한 켠에 두었던 나무로 만든 작은 십자가(묵주)였다. 천주교 신자인 직장 동료가 선물로 준 것이었다. 나는 당숙모에게 짧은 시간에 예수님의 대속(代贖)의 은혜를 설명하였고 결정적인 순간, 당숙모의 손에 그 십자가를 쥐어 드렸다. 그 후 당숙모는 십자가를 손에서 놓지 않으셨다. '그려. 내가 지은 죄가 많지. 며느리 교회 다닌다고 핍박도 많이 했지...' 하시면서 그 십자가를 가슴에 꼬옥 품고 하늘나라에 가셨다.

오늘 나는 또다른 십자가 목걸이를 선물로 받았다.
하양, 노랑, 검정 색실로 꼬아 만든 목걸이는 소품이긴 하지만 누가 보아도 정성이 담뿍 담긴 작품이었다. 그의 말로는 아무리 손을 빨리 놀려도 하나 만드는데 족히 서너 시간 걸린다고 하였다. 그것도 재료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건이며 옷가지에서 일일이 색실을 뽑아서 만들어야 하기에 그 목걸이 하나 만드는데 쏟는 정성은 며칠 동안 계속되는 것이다. 목걸이를 만든 주인공은 40대 초반의 수용자(형제)였다. 그는 전과만도 7회였고 20년 가까운 수형생활을 했으니 어린 날을 제외하곤 담 안의 생활이 담 밖 생활보다 더 익숙한 셈이었다. 게다가 이번에도 10년형을 받았으니 징역살이에 이골이 난 친구였다. 그런 그가 날 보고 싶다는 전갈이 왔다. 내 딴에는 이 친구가 나에게 무슨 시비(?)를 걸까?하는 의구심이 앞섰지만 나를 찾는다는데 만나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나를 보더니, 대뜸 선물을 주고 싶어서 날 보자고 했다며 멋쩍게 웃었다. 내 선입견이 얼마나 부끄러웠던지? 사실 그는 직원들에게 요시찰(要視察)대상이었다. 근무 중 수용자 처우와 관련된 직원들의 약점을 놓치지 않는 그였기에 그럴 만도 하였다. '최 집사님(크리스천 교도관을 그렇게 부르기도 함), 소문 들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같은 징역잽이한테 좋은 일을 하신다면서요... 그래서 제가 큰 맘 먹고 선물 하나 준비했습니다' 그러면서 숨긴 보석을 꺼내듯 건네 준 것은 그 앙증맞은 십자가 목걸이였다. 가슴이 뭉클 했다.
이제 나는 그에 대한 선입견을 정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해하지 않으면 사랑할 수 없듯, 내 사랑이 그가 건네준 십자가에 얽힌 사랑이라면 더욱 그러했다. 알고 보니 그는 틈틈이 그 정성 가득한 십자가 목걸이를 만들어 직원과 동료 수용자들에게 선물하며 은연중 십자가의 숨은 사랑을 알게 모르게 전파하고 있었다.
"ㅇㄱㅎ 형제님, 고맙네요. 이 십자가 목걸이 잘 간직할게요. 보면 볼수록 참 앙증맞네요..."
십자가 목걸이를 내 목에 걸고 거울 앞에 서 보았다. 실로 만든 목걸이가 황금 목걸이마냥 빛이 날리 없고 화려할 리도 없지만 정말 자랑스럽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내 죄 값으로 엄연히 죽었던 목숨에서 다시 살았다는 확실한 증거! 증거는 유효하고... 그러니 자랑할 수밖에.
다시금 가슴에 품고 싶은 말씀이 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http://column.daum.net/daman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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