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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성도이상돈의신앙이야기[제2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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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늘 그렇듯이 감사를 드리며 오늘의 이야기 시작 합니다.

    
그때 당시에 바둑에 그렇게 골몰하여 배우다가 또 하나의 소득이 있었는데요, 그것은 인터넷을 하게 된 겁니다. 제가 지금 이렇게 날마다 인터넷에 글을 올리고 있으니까 오래전부터 컴퓨터를 잘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 혹 있을지 모르는데요.

사실은 지금으로부터 약 4년 전까지 저는 완전한 “컴맹” 이었습니다. 게다가 다 나이들어 그런건 해서 뭐하나 하고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집에서도 시간이 날 때마다 하나님께서 “공갈젖꼭지” 내 놓으라고 하니까 그게 싫어서 인터넷 하는 것을 얘들에게 조금 코치 받아서는 바로 인터넷 으로 사이버 바둑을 두기 시작 했던 겁니다.

그때부터 우리 딸보다 제가 인터넷을 더 많이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그 이상한 하나님의 주문을 회피하고 있었는데요. 그러면서 어느 날 보니까 이거 컴퓨터라는 게 무지하게 재미가 있더군요. 여기서 잠깐 딴 이야기 좀 하겠습니다. 컴퓨터에 관해서 인데요,

그래서 그 후로 재미있게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다보니 세상에.. 나처럼 글씨가 악필인 사람이 왜 진작 이것을 몰랐는가? 하고 후회를 엄청 했었다니까요. 그 뒤로는 아예 다른 필기도구로 글씨 쓰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오죽하면 군대에 가 있는 아들이 입대하여 제대할 날이 다 되어 가는 동안에 아들에게 편지를 꽤 많이 보냈는데요, 모두 컴퓨터로 써서 보냈겠습니까?.

하여튼 글씨체 엉망인 사람에게는 컴퓨터가 너무나도 좋은 것 같습니다. 특히 이렇게 긴 글을 쓸 때에는 더더욱 말입니다. 하여튼 열손가락으로 글을 써서 그런지 지금은 다른 필기도구로 글을 쓰는 것에 비하여 정확한건 모르겠으나 서너 배는 빠른 것이 확실할 겁니다. “컴퓨터 파이팅” 이런 생각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하하하... 철들기 전에도 그랬는데 지금이야 말해 뭐합니까?  한마디로 너무나 좋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하나님과 "공갈젖꼭지“ 쟁탈전을 1년여 벌이다가 어느 따뜻한 봄날 아마도 2000년 봄일 겁니다. 새천년이 되기도 했고 기분이 그래서 그랬는지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그래 이제 그만 다 내려놓기로 하자, 몇 번씩 다시 필름을 돌려보니 정말로 뭐 잘난 것 하나도 없고, 억울할 것도 없지 않은가?

모두가 내가 선택했던 일인 것을...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왜 그때 도와주시지 않았는가? 하는 것 때문에 서운하고 슬펐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함께하시면서 항상 옳은 길로 갈 것을 주문했었다는 것을 필름을 돌리면서 확인하지 않았는가, 억울한 일을 당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미리 다 알려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욕심을 부리다가 깨닫지 못하지 않았던가?

남들이 부러워하는 일이라서 그것을 하고 싶어 할 때에 하나님께서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음에도 그때마다 내가 그쪽이 힘들 것 같으니까 핑계대고 다른 일로 바꾸고는 하지 않았던가? 부끄럽다, 정말로 한없이 부끄럽다.“ 이렇게 고백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참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가슴 저 깊고 깊은 심연으로부터 45년 동안 응어리 졌던 그 한의 덩어리들이 녹아내리고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그러셨습니다. “이자식이 이제야 ”공갈 젖꼭지“ 입에서 빼냈구만. 자 이거 도로 가져가 그리고 가지고는 있으되 다시 입에 물지는 말고.. 누가 그 별것도 아닌 것을 가져 갈까봐서 그렇게 앙탈을 부리냐 이 어리석은 놈아.”  

나참! 어이가 없어서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그걸 가져가려고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입에서 빼내기만을 원하셨던 겁니다. 사랑한다고 말로만 하지 말고 내면 깊숙이에서 우러나서 하려면 “젖꼭지” 입에 물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걸 가르쳐 주시려고 한 것입니다. 하여튼 “공갈젖꽂지” 포기하고 나니까 심연의 깊숙한 곳에서 기쁨이 밀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확실하게 확인한 것이 있었는데, 수없이 필름을 돌리는 동안에 늘 하나님께서 함께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겁니다. 그런데도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겁니다. 왜 그랬을까요? 당연히 제가 하나님께 여쭤봤겠지요? 그렇습니다. 여쭤 봤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러셨습니다. “그것은 못나빠진 네 자아(自我)때문이란다. 인간들은 누구나가 본능적으로 내가(하나님) 함께한다는 것을 알고 있단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인간이라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자신만이 뭔가 특별해야 한다는 자아(自我)가 있는 것이며 동시에 나를 섬겨야 한다는 본능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를 잘 섬겨야만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얻게 된다는 본능적인 것으로 말미암아 그토록 서로가 타인을 깔아뭉개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나를 섬긴다는 것은 그렇게 올라가려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낮아지는 것이다 특히 겉으로만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진정으로 낮아지는 것이다.

그렇게 수없이 가르쳐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보고도 보지 못하고 듣고도 듣지 못했던 네 녀석이었음을 이제 확실히 알게 되지 않았느냐 자세히 알려면 책(성경책)좀 봐라 책 좀.. 그러면서.. 이어지는...잔소리... 잔소리 ....” 하여튼 무지하게 지루(?) 했는데요. 다행스럽게도 제가 엄청 무식해서 말이죠. 더 이상 표현을 못합니다.  

하여튼 그때부터 비로소 하나님이 저와 함께한다는 사실이 온전히 믿어지기 시작한 겁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인간들 누구하고도 함께하고 있음도 믿어졌습니다. 그러면서 제 자신에 대하여 세상에서 가장 잘나지도 또 그렇다고 못나지도 아니한 세상에 오로지 하나뿐인 소중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동시에 세상의 모든 이웃들 또한 그렇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누구라도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온전히 믿어지기만 하면, 그 순간부터 늘 하나님을 만나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이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던 겁니다., 따라서 2000년 어느 따뜻한 봄날부터 저는 늘 저와 함께해 주시는 온전한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겁니다. 왜냐하면, 믿어졌으니까요. 믿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요. 제가 아는 한 제가 궁금했던 모든 것들에 대하여 비록 “제 능력의 범위 안” 이기는 하지만 궁금하고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단 한 가지도 없게 됐으니까요.

하나님께서 제 질문에 대하여 제 눈높이에 맞추어서 모두 다 설명해 주셨 으니까요. 제가 그랬지 않습니까? 저는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을 무조건 믿을 수 있는 그런 체질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늘 생각을 많이 해야 되고 어떤 때는 그러는 내 자신 스스로가 피곤할 때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순수하고 단순하게 의심 없이 무엇을 잘 믿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좋아하게 된 겁니다.

지금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믿어진 현재도 역시 그런 의심 없는 믿음을 갖고 살아가는 분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저의 장모님께서 비록 무학 이시라서 학문은 없으시지만, 지혜롭게 세상을 사시면서 늘 자식들을 위해 무조건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고 열심히 기도하고 사시는 제 장모님을 정말로 사랑하는 것도 그래서 입니다.

하여튼 제가 그 당시에 “생각여행”을 통하여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은 이해가 갈 때 까지 생각하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반드시 이해가 가는 때가 있었고, 그런 식으로 하나씩 제가 궁금해 하던 것들을 그렇게 해결해 나가다 보니 언제부터인지 기억엔 없지만, 슬그머니 궁금한 것들이 없어지더군요.

혹시 힘들어서 포기한 거 아닐까요? 글쎄요. 저도 그런 생각이 좀 들기는 합니다. 하하하...그러나 지금 다시 그때를 기억하며 생각해 보지만, 비록 “제 능력의 범위 안” 이긴 하지만, 온전히 이해가 갔던 걸로 믿게 됩니다. 제가 다른 건 몰라도 뭐가 궁금한데 처음부터 별 관심이 없어서 알고 싶지 않으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끝까지 붙들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일을 해결하지는 못하더라도 이해가 갈 때 까지는 알아야 끝내는 못된 버릇이 좀 있거든요. 아무튼 그러나 제가 아무리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고 하더라도 그 어떤 힘(하나님)이 없이는 도저히 이해가 불가능 하다고 생각되는 일들이 좀 많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이해가 가고 해결이 된 겁니다. 그처럼 다 이해가 갈수 있게 해결 됐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안 믿을 수가 있습니까?

그렇게 모든 것이 풀리고 이해가 가니까 살아계신 하나님이 믿어지면서 그때부터 가끔씩 성경을 펼쳐놓고 하나님의 말씀도 듣게 되더군요. 여기서 제가 성경을 읽는다고 하지 않고 듣는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을 들었습니다. 제가 다른 건 몰라도 책은 좀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이것저것 읽게 되는데요. 제 기호에 맞는 책을 읽게 될 때에는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을 쓴 저자에게서 직접 듣는 기분이 들 때가 가끔 있었습니다.

당연히 기호에는 맞지 않아도 어떤 지식의 습득을 위해 읽을 때는 그냥 읽는 게 되지요. 따라서 자연히 기호에 맞는 책을 더 가깝게 읽게 되는데 말입니다. 지식의 습득을 위해 읽는 책은 여러 번 읽어도 영 마음에 와 닿지 않을 때가 많지만, 말씀으로 듣게 되는 책은 한번만 보아도 그 내용에 대하여 외우지는 못하지만, 이해는 많이 할 수 있게 되더군요. 너무나도 마음에 와 닿을 땐 그대로 외워지기도 하구요. 아마도 누구나 다 그럴 겁니다.

제가 지식의 습득을 위해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믿어지기 전에도 성경을 좀 읽어 보았었거든요. 당시에 제 느낌은 이랬습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글을 읽을 줄 알게 된 이후로 이처럼 엉터리 같은 책은 처음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좀 많기는 하지만, 보편적으로 대부분이 새빨간 거짓말과 억지로 우격다짐하는 내용으로 과대포장 되어 있지 않은가? 이렇게 생각 했었습니다.

과장(誇張)의 극치를 보여주는 중국 무협소설도 이보다는 덜하겠다는 생각도 했었을 겁니다. 아마.. 하여튼 제가 그렇게 못됐었습니다. 그랬었는데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믿어지고 난 이후로는 성경을 읽으려고 펼쳐놓고 앉아 있다 보면,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내 앞에 앉아서 다정하게 이야기를 해 주고 있다는 착각에 빠질 때가 좀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말을 듣는다는 것은 곧 질문할 수도 있음을 의미하므로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듣게 되면 되물어서 이해를 하게 되는 일들이 많고 그래도 이해가 안갈 때면 나보다 더 많은 말씀을 들었을 것이 분명한 존경하는 목사님들을 찾아서(인터넷c3tv설교방송에 엄청 많이 계십니다.) 도움도 받고 그렇게 합니다. 당연히 성경책이 언제부턴가 제 기호에 맞는 책이 된 거지요.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이야기 합니다. 종반이 가까워 오면서 또 다른  오해를 받을지도 모를 것 같은데 말입니다. 그냥 제 생각이고 제 나름대로의 이야기 이니까 이해하고 읽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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