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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진실(眞實)의 가교(架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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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된 진실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 곽순종 목사 (바울선교회 정보국장) 

보석 같은 이야기, 진실이 담겨 있는 이야기, 사랑이 배어 있는 이야기, 세속에 때묻지 않은 맑고 순수한 이야기, 오색 단풍의 옷을 입은 아름다운 이야기, 진실로 속 열매가 알알이 맺힌 이야기를 열어 볼 수 있는 기회는 없을까?

실종된 진실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잃어버린 이야기를 어디서 획득할 수 있을까? 얄팍한 종이처럼 가벼워진 마음은 언제 그 방황을 그치고 진실과 사랑의 호수를 찾을 수 있을까?

이웃에서 만나는 사람들, 차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이름 모를 사람들, 직장에서 접촉하는 동료들, 귀가하여 다시 보는 가족의 얼굴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의 옷깃을 스치고 많은 사람들과 무언이든 유언이든 대화를 하고 살아간다.

이러한 대화와 만남 가운데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짓고 있는 것인가? 흥미로운 이야기인가? 시시콜콜한 이야기인가? 낙엽처럼 가볍게 날리는 이야기인가? 조그마한 진실이 심겨있는 이야기인가?

우리는 이야기들을 찾아 책을 읽기도 하고 영화를 보기도 하고 TV드라마에 소일해 보기도 한다. 실재가 아니라 가상의 스토리이고 허구이다. 그러나 우리는 진실의 그림자라도 맛보고자 여러가지 이야기거리를 찾아 나선다.

예수님은 많은 이야기거리를 우리에게 제공하셨다. 직설적인 진술이나 설명보다 비유와 이야기를 자주 사용하시면서 심오한 진리와 진실을 전하셨다. 신약성경의 마태복음서에서는 예수님은 그의 가르침 가운데 43%를 비유를 통하여 천상적 진리를 가르치셨고 누가복음서에서는 비유가 주님의 가르침의 52%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비유는 신약성경의 원어인 헬라어에서는 ‘나란히 놓는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알기 어렵고 추상적인 진리를 알기 쉽고 구체적인 이야기를 통하여 전하셨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많은 비유와 이야기를 남겨두셨다. 관계의 하나님은 이 땅에 관계를 통해서 이뤄지는 인간 사회를 예정하셨다. 사람들의 관계와 만남을 통하여 이야기는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그리고 의미 있는 이야기들은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고 만날 수 있는 디딤돌이 된다. 참된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는 진리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진실을 만나고 거룩한 사랑에 이른다.

그저 흘러가고 지나는 양적 개념의 시간(크로노스)이 아니라 의미심장한 사건이 일어나는 시간(카이로스), 삶을 풍요롭게 살찌우는 시간을 접하거나 만들어야 한다. 치유의 시간, 회복의 시간, 감동의 시간, 축복의 시간, 사랑의 시간, 기쁨의 시간을 우리는 갈망한다.

조급한 발걸음을 멈추고 삶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어 보자. 아름다운 이야기를 찾아 산책을 떠나자.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선한 욕심은 없는가?

대학시절 담당 교수님이 비무장지대에 위치한 대성동에서 사역하고 있는 제자로부터 선물을 받으셨다고 한다. 그것은 단순히 한 상자의 감자이었을 뿐이다. 비록 비싼 선물은 아니지만 제자의 정성과 마음이 담긴 값진 선물이었기에 그의 기억에서 쉽게 떨칠 수 없었다.

한국 신약계의 거목이셨고 이미 작고하셨는데 문상희 교수님은 나의 지도 교수님이셨다. 한국사회에서 중책을 맡은 여러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준 은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분은 당시 젊은이들이 노인마냥 마음이 둔감하고 느낌이 부족하다고 핀잔을 주셨다.

하루는 학생들 앞에선 단상에서 6.25 한국전쟁 당시 참전할 때의 기억을 끄집어 내셨다. 처음 군입대를 위해 떠나는 아침에 그 교수님의 부친은 군화를 내미셨다. 그런데 전장을 향하여 나아가는 아들이 동상이라도 걸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밤늦도록 군화에 기름을 입히셨다고 한다. 그 부친의 사랑이 교수님의 눈물로 변화하여 말을 제대로 잊지 못하셨다.

나의 집안이 사업에 실패하여 가세가 기운 때에 아들을 대학을 보내 놓고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일터로 떠나시는 초라하기 짝이 없던 어머니의 뒷모습을 바라고 가슴 속이 뭉클하였다. 자식을 위한 희생적이고 가식이 없고 순수한 사랑 때문이었다. 나는 사실 그 때부터 어머니를 진정으로 존경하기 시작하였다.

필리핀에 있을 당시 친하게 지내던 현지인 목회자가 가슴에 담아둔 얘기를 펼쳐보였다. 어느날 가난한 여성도가 헌금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 집에 간직해 둔 선물을 가져왔다. 그 성도가 고이 간직해 두었던 단지 다섯 개의 달걀을 선물로 가져왔던 것이다. 그 여성도는 물질 대신 마음을 선물로 가져왔고 그 목회자는 그 성도의 순수하고 꽃과 같은 마음을 잊지 못하였다.

예루살렘에 계시던 날 예수님은 사람들이 헌금궤에 돈을 넣는 것을 지켜보실 기회가 있었다. 많은 부유한 사람들이 다가와 많은 액수의 돈을 그 궤에 쏟아 붓는다. 묵직하게 떨어지는 돈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그 때 가난하고 홀몸이 된 과부가 나타났다. 부자들의 고액의 헌금에 너무 왜소하게 느껴졌다. 겸연쩍은 그 여인은 겨우 렙톤 두개를 헌금궤에 넣는다. 렙톤은 가장 작은 동전이었고 적다는 의미를 간직한 화폐였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여인이 어느 누구보다도 헌금을 많이 했다고 결론지으셨다. 그 과부는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렸기 때문이다. 그녀는 사랑하는 이를 너무나 사랑하였나 보다. 모든 것을 다하여 사랑하였다.

한 사람을 사랑하기에도 역부족이고 여력이 없는 판에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두 연인을 만난다는 것이다. 적지 않은 이들이 두 명 이상의 애인을 두고 사귀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이를 합당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자기의 이해타산을 따라 교제하다가 교제하는 대상 가운데 한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하는 것이다. 존재로의 가치보다는 상품적 가치를 우선하는 교제의 상업화가 아닌가 싶다. 사랑이 유린당하고 애정이 실종된 현실이 아닌가 싶다.

최근에 접한 아름다운 일화가 있어 나의 예화집에 간직해 두었는데 다시 꺼내 보여야겠다. 거동이 매우 불편한 연로하신 여성도가 굽은 허리에 한 손을 지팡이에 의지하면서 연약한 몸을 이끌고 기침으로 고생하는 담임 목회자를 찾아 왔다. 이 연세가 지극한 성도님은 특별한 선물을 보자기에 쌓은 채 선사했다. 그 보따리를 펼쳐보니 빨간 석류 두개가 놓여 있었다. 뜨거운 사랑의 마음을 싱그럽고 붉은 석류 한알 한알에 모두었다. 그 선물을 받은 목회자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고 기록하였다.

많은 말, 많은 정보, 많은 글, 많은 이야기가 널려 있지만 우리의 심금을 울리고 참된 만남과 순수한 사랑에 갈증을 느끼게 하는 이야기를 찾고 싶고 또는 그러한 스토리(story)를 짓고 싶다.

편리와 풍요, 자만과 독선으로 가득한 세상을 향하여 세상의 경박함과 공허함을 깨치고 생의 이야기를 표출할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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