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칼럼 미래는 문화가 지배한다

첨부 1


“한국에 기독교가 있느냐? 있다. 한국에 문화가 있느냐? 있다. 그렇다면 한국에 기독교 문화가 있느냐? 답변이 망설여진다.” 다형 김현승 시인의 지적이다.

기독교문화의 황무지. 주일예배에서부터 실감한다. 예배 용어나 선포되는 설교는 언어부터 어법에 맞지 않으며 대부분 순화되지 못했다. 심지어 혐오스럽거나 폭력성까지 짙어서 그 뜻이 왜곡되거나 경건성을 해치기도 한다.

사도신경의 새 번역작업이 이제야 시도된 것이나 성경의 새로운 번역이 잔손질에 머무른 것 등은 한국 기독교 문화의 취약성을 입증한다. 찬송가와 교회음악 역시 전문적 검증 없이 이미 지성소를 점령해버렸다. 예술분야의 상황도 피상적이기는 마찬가지다.

1930년대 일제 총독부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발행된 잡지는 228종이었으며 그 가운데 기독교 잡지는 90여종이었다. 당시 기독교 인구는 40만명이 못 되었다. 오늘은 어떠한가? 기독교 인구는 1200만명을 웃돌고 잡지는 4500종이 넘는다. 그러나 시판되는 기독교 잡지는 100여종이 못 된다. 이런 통계에 충격을 받지 않는다면 그것이 더 큰 충격이다.

문화란 무엇인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의 말씀을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바르게 증거하는 다양한 수단을 총칭한다. 그래서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미디어도 문화이다. 미디어가 메시지이듯 문화 장르도 메시지인 것이다.

21세기를 문화의 세기라고 한다. 이는 유비쿼터스의 세계가 문화산업과 접목이 되면서 엄청난 부를 창출하는 경제논리의 발상일 수 있다. 그러나 하이테크 문화에 공허해진 인간이 하이터치 문화를 갈망하는 필연적 흐름이기도 하다.

결국 문화의 미래는 콘텐츠가 열쇠다. 문화유통업이나 문화소비자의 반열에만 머물러 있다면 미래는 비극이다. 모방문화의 안일함도 반역적 행위다. 오직 문화 콘텐츠 생산자의 반열에 서야 한다.

어떤 문화를 만들어갈 것인가? 전후 일본은 지식산업에 집중했다. 일본의 한 출판사에서대백과사전을 펴내고자 했으나 종이가 없었다. 전쟁중 침몰한 배에 적재된 종이를 인양해서 사전을 출판했다. 그래서 소금기 때문에 비가 오는 날이면 책의 부피가 커졌다가 날씨가 맑으면 줄어들곤 했다.

독일은 구텐베르크의 인쇄기로 성경을 찍어냈다. 이보다 40년이 앞선 한국의 금속활자 기술은 불교도서 ‘직지심경’을 찍어냈다. 전자는 기독교문화의 확산을,후자는 불교문화를 낳았다.

이 땅에 기독교문화의 계절은 언제쯤 올 것인가? 물량적 외형 부풀리기에만 매달려 있는 토양에서는 미래가 없다. 아직은 늦지 않았다. 서둘러 기독교문화 창작의 엘리트들을 보호·육성해야 한다. 문화사역자 문화선교사를 제도화하고 바른 정책을 통해서 진흥시키자.

문화는 복음 전달의 첨병이다. 동시에 미래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문화를 지배할 것이냐,아니면 문화의 지배를 받을 것이냐는 우리의 선택이 좌우한다.


박종구<월간목회 발행인>([email protected])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