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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글 의문 투성이 주몽..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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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주몽을 잼있다고 열심히 봤습니다. 그런데.. 대체적인 의견들이.. 역사왜곡이 너무 심하다고해서.. 자료를 다시 찾아보고 있는데요.. 의문이 안풀리네요..ㅡㅡ;;; 현재 주몽에서 금와가 왕으로 나옵니다. 금와의 아빠의 아빠가 해모수라고 합니다. 여기에 뒷받침 하는 이야기가.. 금와의 할아버지 해모수가 아들 해루부를 보내는데 그 해루부가 부여를 세운다고 합니다. 그런데 해루부가 아들이 없어서 기도하러 갔다가 내려 오는데 말이 눈물을 흘려서 가서, 그 앞에 있는 돌을 드니까 그 밑에서 황금 빛을 내면서 아기가 있었는데 개구리 처럼 생겻다고 해서 금와라고 지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따지면 유화부인은.. 지금 금와왕의 부인으로 나오는데.. 이거 머가 어떻게 되는건가요??;;; 그리고.. 해모수랑 유화사이에서 주몽이 태어났는데 그러면.. 지금 금와왕의 자식으로 주몽이 나오는것도 말도완되고.. 참.. 이거 황당스토리인데요..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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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

최영욱 작성자 2006.10.16. 23:32
앗.. 해루부가 아니고 해부루네요.. 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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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2006.10.16. 23:32

- '고려본기'에서의 고구려 건국신화 -

『고려본기』에 전해져오는 고구려 건국에 얽힌 이야기이다. 고구려의 시조 동명성제는 성은 고(高)씨요 이름은 주몽(朱蒙)이다. 부여 해부루왕의 뒤를 이어 금와왕이 즉위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금와왕은 태백산 남쪽 우발수를 지나다가 눈부시게 아름다운 젊은 여인을 만나게 되었다. 뜻밖의 장소에서 미인을 만난 왕은 호기심이 일어 가까이 다가가 물었다. 여인의 몸으로 어찌 이런 곳에 있는가 ? 왕의 물음에 그 묘령의 여인은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았다. 저는 본시 물의 신 하백(河伯)의 딸로 이름은 유화라고 합니다. 어느 날 동생들과 함께 나들이를 갔다가 한 남자를 만났지요. 그는 천제의 아들 해모수라고 하면서 저를 꾀었습니다. 저는 그가 이끄는 대로 웅신산 밑 압록강가의 외딴 집으로 따라가 정을 통하였답니다. 그러나 그는 그 길로 떠나더니 영영 돌아오지 않는 것이었어요.부모님은 낯선 사내를 따라가 함부로 몸을 맡겼으니 이렇게 부끄러운 일이 어디 있느냐며 노발대발하셨죠. 그래서 결국 이곳으로 귀양살이를 오게 된 것이랍니다.

유화의 사연을 들은 금와왕은 보통 여인네가 아니다 싶어 그녀를 궁궐로 데려왔다. 그리고는 빛이 들지 않는 으슥한 방에 가두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빛도 들지 않던 그 방으로 햇빛이 들어오더니 유화의 몸을 비추는 것이었다. 유화가 햇빛을 피해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지만 햇빛은 계속 따라다니며 비추었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햇빛이 그녀의 몸을 비추면서 점점 배가 불러오더니 마침내 잉태하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아이를 낳고 보니 그것은 크기가 닷 되나 되는 커다란 알이었다. 금와왕은 사람이 알을 낳은 것이 못내 꺼림칙해서 그 알을 내다버리게 했다.

시종들이 유화에게서 알을 빼앗아 개와 돼지에게 던져 먹게 했지만 어느 놈도 먹으려들지 않았다. 다시 말과 소들이 다니는 길바닥에 버려 깨뜨리려 하였지만 말과 소들은 오히려 조심스럽게 알을 피해가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다시 들판에 갖다 버렸더니 이번에는 새와 짐승들이 와서 알을 덮어 보호했다. 화가 난 왕이 알을 가져다 깨뜨려 보려했지만 어찌나 단단한지 도저히 깨뜨릴 수가 없었다. 그제서야 사람의 힘으로 안되는 것을 알고 어미 유화에게돌려주었다. 유화가 알을 잘 감싸서 따뜻한 곳에 두었더니 드디어 사내아이 하나가 껍질을 깨고 나왔다. 성장하면서 아이는 그 골격이나 외양부터가 남달리 장대하고 영특해서 비범하게 보였다. 나이 겨우 일곱 살에 제 손으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쏘는데 그것이 백발백중이었다. 동부여에서는 활 잘 쏘는 사람을 주몽이라 부르는 풍속이 있어 자연히 주몽이라 불리게 되었다. 금와왕에게는 아들 일곱이 있었는데 언제나 주몽과 함께 활도 쏘고 말도 타며 놀았다. 그러나 무엇을 해도 주몽을 따를 수가 없었다. 주몽의 재주를 시기한 맏아들 대소(帶素)는 왕에게, 주몽은 사람이 낳은 것이 아니니 빨리 처치하지 않는다면 후환이 있을 것입니다. 하며 죽이기를 재촉했다. 그러나 금와왕은 대소의 말을 물리치고 대신 주몽을 마굿간에서 일하게 했다. 주몽은 자신을 시기하는 대소의 무리가 있는 한 자신의 신상이 안전치 못함을 알고 차근차근 앞날을 대비해 갔다. 주몽은 말을 볼 줄 아는지라 일부러 품종이 좋은 날쌘 말에게는 먹이를 조금 먹여 볼품없이 여위게 만들고 굼뜬 놈은 오히려 잘 먹여서 살찌게 만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왕은 보기좋게 살찐 말은 자신이 타고 여윈 놈을 주몽에게 주었다. 주몽은 말먹이꾼으로 있으면서도 오이, 마리, 협부 등 충실한 벗을 사귀고 기예를 연마하며 부지런히 앞날을 준비해 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여러 왕자들과 그 신하들은 주몽의 성장을 두려워하여 주몽을 해칠 모의를 하였다. 이를 눈치챈 주몽의 어머니 유화부인은 몰래 주몽을 불러 일렀다.

이 나라 사람들이 너를 해치려고 하니 빨리 손을 쓰는 것이 좋겠구나. 너의 재주와 계략이라면 어디를 간들 못살겠느냐. 어서 몸을 피해 후일을 도모하거라.

어머니와 눈물로 작별한 주몽은 길들여 둔 준마를 타고 세 사람의 친구와 함께 서둘러 동부여 땅을 떠났다. 이들이탈출한 것을 안 일곱 왕자는 정예병을 이끌고 곧바로 말을 달려 추격해 왔다. 숨가쁘게 말을 달리던 주몽 일행은 엄수(淹水)에 이르러 길이 막히고 말았다. 추적자들의 말발굽 소리는 가까워 오건만 앞을 가로막은 시퍼런 강물을 건널 길은 묘연했다. 주몽은 앞으로 나서며 강물을 향해 큰 소리로 호소했다.

나는 천제의 아들이요, 물의 신 하백의 외손이다. 오늘 화를 피해 도망하는 길에 뒤따르는 자가 쫓아 닥치니 이일을 어찌하면 좋겠는가 ?

주몽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강물 속에서 물고기와 자라들이 새까맣게 떠오르더니 순식간에 다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주몽 일행이 그 다리를 달려 강을 건너자 물고기와 자라들은 곧 물 속으로 흩어져 버렸고, 추적자들은 시퍼런 강물을 보며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이렇게 해서 간신히 추격을 따돌린 주몽 일행은 마침내 현도군이 자리했던 졸본주에 당도했다. 주몽은 그곳을 도읍으로 정하고 미처 궁실을 지을 사이도 없이 비류수(沸流水) 근처에 초막을 지어 거처로 삼았다. 그리고는 나라 이름을 고구려(高句麗)라 하고 자신의 성을 고씨로 정했다. 이 때가 기원전 37년으로 주몽의 나이 열 두 살이었다.

(출처 : ''고려본기'와 '삼국사기'의 고구려 건국신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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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2006.10.16. 23:32

- '삼국사기'의 고구려 건국신화 -

고구려의 건국신화는 중국과 우리나라의 기록을 합해 10여종류가 넘게 전해지는데, 내용은 조금씩 다르다. 아래의 내용은 「삼국사기」에서 말하는 고구려의 건국신화이다.

≪ 부여왕 해부루는 늙도록 아들이 없어 산천에 제사를 지내 후사를 구하려고 하였다. 가는 길에 곤연이라는 큰 연못에 이르렀는데, 임금이 탄 말이 큰 돌을 보고 그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왕이 괴이하게 여겨 사람을 시켜 그 돌을 뒤집자 금색을 띤 개구리 모양의 작은 아이가 있었다.왕이 기뻐하며 말하기를 이 아이는 하늘이 나에게 준 훌륭한 아들이다하고는 거두어 기르며 이름을 금와(金蛙)라 하였다. 금와가 자라자 태자로 삼았다.

뒷날 재상 아란불(阿蘭弗)이 왕에게 아뢰었다.

얼마 전에 하느님이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장차 나의 자손을 시켜 여기에 나라를 세우려 한다. 너희들은 동쪽 바닷가로 피해 달아나거라. 그곳에 가섭원(迦葉原)이라고 부르는 땅이 있는데 토양이 비옥하여 오곡이 잘 자란다. 도읍을 할 만한 곳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아란불은 끝까지 왕을 권유하여 그곳에 도읍을 정하고는 나라이름을 동부여 라고 불렀다. 부여의 옛 도읍지에는 어떤 사람이 알지 못하는 곳에서 와 스스로 천제의 아들 해모수(解慕漱)라 일컬으며 새로 나라를 세웠다.

해부루가 죽자 금와가 임금자리를 이었다. 금와왕이 어느날 태백산 남쪽에 있는 우발수가에서 한 여자를 만났다. 왕이 이 여자의 내력을 물어보자 이렇게 대답하였다.

나는 하백의 딸로 유화라고 합니다. 여러 아우들과 함께 놀이를 나갔다가 어떤 남자를 만났습니다. 그 남자가 '나는 천제의 아들 해모수이다.'라고 하였습니다.그는 나를 유혹하여 웅심산(熊心山)아래 압록강가의 어느 집으로 데리고 가서 사통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곧바로 떠나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부모는 나에게 중매인 없이 남자를 따라갔다고 꾸짖고는 우발수 언저리에 귀양살이를 시켰습니다. 》

여기까지가 해모수와 해부루의 관계, 금와와 유화의 만남을 알려주고 있다.

《 금와왕은 괴이하게 여겨 은밀한 방에 유화를 유폐시켰다. 어느 날 방안에 햇살이 내려쪼여 유화는 몸을 피했다 햇살은 유화의 몸을 따라 움직였다. 유화는 이 때문에 잉태하여 큰 알 하나를 낳았는데 크기가 닷 되 분량이 들어갈 만하였다. 화가 난 왕이 알을 개와 돼지에게 주었으나 모두 먹지 않았다, 길가에 버리게 하였으나 마소가 이를 피해 갔다 그 뒤에는 들판에 버리게 하였는데 새들이 날개로 덮어주었다. 왕이 이것을 쪼개보려 하였으나 깨뜨려지지 않았다. 할수없이 알을 어머니에게 돌려주었다, 유화가 알을 보자기에 싸서 따뜻한 곳에 놓아두었더니 한 사내아이가 껍질을 깨고 나왔다. 아이의 생김새가 영걸스럽고 기특했는데. 일곱 살이 되어서는 우뚝한 기상이 있었다. 스스로 활과 화살촉을 만들어 백번 쏘면 백번 다 맞혔다. 부여에서는 활 잘 쏘는 사람을 주몽이라 불렀기 때문에 이를 그대로 이름으로 삼았다, 금와왕에게 일곱 아들이 있는데 늘 주몽과 겨루기와 놀이를 했으나 모두 그 재능이 주몽을 따르지 못했다. 왕의 맏아들 대소(帶素)가 왕에게 아뢰었다.

주몽은 사람이 낳은 아이도 아니고 지나치게 용맹스럽습니다. 만약 일찍 조치하지 않으면 후환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제거하기를 요청하였으나 왕은 들어주지 않았다. 왕은 주몽에게 말 기르는 일을 맡겼다. 주몽은 말을 기르면서 준마에게는 먹을 것을 적게 주어 비쩍 마르게 만들고 노둔한 말에게는 먹을 것을 넉넉하게 주어 살찌게 만들었다. 왕은 살찐 말을 골라 스스로 타고 마른 말을 골라 주몽에게 주었다. 어느 날 들판에서 수렵을 하게 되었다. 이때 주몽에게는 화살을 적게 주었지만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짐승을 잡았다. 왕자들과 신하들은 그를 모살하려 고 음모를 꾸몄다.》

여기까지의 내용은 주몽이 태어난 내력과 그가 성장하면서 자질이 뛰어났으나 고난의 역정을 걸은 이야기로 엮여 있다.

《 주몽의 어머니가 이 음모를 알고 주몽에게 일렀다.

'나랏사람들이 너를 해치려 한다. 너의 재략으로 어디에 간들 큰일을 못하겠느냐. 여기에서 머뭇거리며 욕을 당하기 보다는 차라리 멀리 달아나서 일을 도모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주몽은 이 말을 듣고 오이, 마리, 협부 세 사람과 함께 길을 떠났다. 그들이 엄호수에 이르러 물을 건너려 하였으나 다리가 없었다. 추격병이 뒤쫓아올 것이 염려되었다. 주몽이 물에게 말하기를 나는 천제의 아들이요 하백의 외손이다. 오늘 달아나 목숨을 부지하려 하는데 추격병이 뒤따라 오고 있다. 어찌하면 좋을꼬?라고 하였다. 그러자 물고기와 자라가 물 위로 떠올라 다리를 만들어주었다. 주몽이 다리를 건너자 물고기와 자라들이 흩어져 바로 들이닥친 추격병은 건너오지 못했다. 주몽 일행은 모둔곡에 이르러 세 사람을 만났다. 그 중에 한 사람은 삼베옷을 입었고 한 사람은 검은 옷을 입었고 한 사람은 무늬옷을 입었다. 주몽이 어떤 사람들이며 성과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자 삼베옷 입은 사람은 재사라 했고 검은 옷 입은 사람은 무골이라 했고 무늬옷 입은 사람은 묵거라 하면서 성은 말하지 않았다.주몽은 재사에게는 극씨, 무골에게는 중실씨, 묵거에게는 소실씨라는 성을 내려주었다. 주몽이 여러 사람들에게 말했다.

내가 바야흐로 하늘의 큰 명을 받아 나라의 터전을 열려고 하였는데 마침 이 세 현인을 만났으니 어찌 하늘의 하사가 아니겠는가?

주몽은 이들의 능력을 헤아려보고 각자에게 일을 맡겼다. 무리가 졸본천에 이르러 그곳의 토양이 비옥하고 산하가 험고함을 보고 도읍지로 정하려 하였다 하지만 궁귈을 지을 겨를이 없어 비류수 위에 초막을 지어 살았다. 나라이름을 고구려라 부르고 주몽은 성을 고씨라고 했다. 이때 주몽은 스물두 살이었다 》

좌보, 우보는 지방조직을 관리하였고, 조정을 책임지는 재상 직책이었다. 제8대 신제 때 국상으로, 제 28대 보장제 때 막리지로 불렸다.

고구려에 의해 정복된 국가의 왕들은 왕,후 등으로 불리다가 각 나부에 편입되어 패자,대주부 등의 작위를 받았다.

지방장관인 욕살은 큰 성의 성주로서 작은성을 거느렸다. 작은 성의 성주를 도사라 한다. 이처럼 고구려의 지방조직은 성 위주로 이루어 졌다.

내부에는 고추가(대원군, 부원군)를 위시한 종실 작위가 있다. 하지만 그 작호는 전해지지 않았다.

각 나부에는 부장인 패자 이하 대주부, 주부, 우태, 조의 등의 작위가 있었다. 이들 작위를 받은 사람은 모두 중앙관료를 겸직할 수 있었으며, 자신이 속한 나부의 지위에 따라 그 한계가 결정되곤 하였다. 이 나부의 체계는 독자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가 제9대 고국천제에 의해 동,서,남,북부로 변경되어 중앙조직에 흡수되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작호도 변경되어 태대형, 대형, 소형, 대대로, 대로 등으로 불렸으며, 이 작호는 때에 따라 관직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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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2006.10.16. 23:32
두 신화를 보니 좀 다른 부분이 있군요. 신화나 소설은 픽션과 허구가 많습니다. 삼국사기는 김부식이, 삼국유사는 일연이 지었는데 김부식은 사대주의적인 발상에서 일연은 불교적인 관점에서 강조하면서 썼기 때문에 둘다 신빙성이 없고 허구가 많이 들어가 있는게 사실입니다. 요즘 TV에서 주몽을 보노라면 예부터 신전이 있었고 신녀가 있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김성일 장로님이 쓴 책에 보면 기생 라합도 기생이 아니라 신녀로 묘사한 것과 비슷하더군요. 또 연개소문에서 김유신이 좋아했던 기생 천관녀도 신녀로 나오고 있습니다. 이걸 보면 그 당시 기생이 기생이 아니라 신녀의 역할을 했다는 것이 더 적절한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로 인해서 예로부터 우리민족이 하나님을 섬겼다는 말을 뒷받침 해 주는 것 같네요. 가야왕의 왕후가 인도에서 예수님 믿던 사람이라고 하는 것 처럼 말입니다. 또 단군 할아버지는 제사장이었다고 하잖아요. 성경에서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하지 않았습니까? 신화를 너무 믿는것도 잘못이지만 신화와 다르다고 해서 역사 왜곡이라고 하기 보다는 올바른 역사를 찾도록 노력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장낙중 2006.10.16. 23:32
정산목사님의 자세한 정보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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