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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정진영 칼럼] 어느 20대의 취업 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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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떨어졌어요….”

풀 죽은 얼굴, 축 처진 어깨가 떠올랐다. 카톡 메시지 너머에 그가 서 있는 것 같았다. 지난 몇 달 동안 방정맞은 ‘깨톡’ 소리와 함께 ‘아들1’이 뜨면 ‘혹시 또’ 하며 가슴을 졸였다. 아들은 지난가을 대학을 졸업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또래에 비해 2년 정도 늦었다. 상대적으로 취업이 쉽다는 공대생이었기에 취업절벽은 남의 일로 여기고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현실은 달랐다. 서류전형과 필기시험인 인·적성 검사에 이어 실무면접은 대개 통과했으나 최종 면접에서 잇따라 실패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본인도 점차 초조해했다. “왜 자꾸 면접서 떨어지지, 이유를 모르겠어요”라고 물었다. “넌 절실함이 부족해.” 한마디로 잘랐다. 위로를 기대했겠지만 매몰차게 응대했다.

가장 들어가고 싶어하는 기업의 최종 면접일 당일 카톡이 왔다. “이번 면접은 정말 잘 봤어요. 아마 될 것 같아요. 이전과는 느낌이 확실히 달랐거든요. 면접관들의 분위기 등이요.”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부족한 듯한 자신감도 충분히 극복했고, 지난 몇 년 치의 회사 사보나 인터넷 검색을 통해 또는 지인을 직접 만나 사내 현황과 현안에 대해서도 철저히 준비했다고 덧붙였다. “도저히 떨어진 게 이해되지 않는다”며 인사팀에 불합격 사유를 알려 달라는 이메일을 보냈다고 씩씩거렸다. 공무원 시험을 생각해보겠다던 아들은 우여곡절 끝에 얼마 전 한 기업에 합격했다. 양복을 고르고 와이셔츠를 사줬다. 출근 때 매기 쉽게 넥타이는 미리 매듭을 지어 몇 개를 걸어뒀다. 큰 짐을 내려놓은 것 같았다. 분루를 삼키는 수만, 수십만의 취준생과 그들의 부모 생각에 가슴은 더 아렸다.

문재인정부는 일자리 정부라고 불리기도 한다. 취임 후 문재인 대통령의 첫 공식 행사가 일자리와 관련된 것이었다. 청와대에 ‘일자리 상황판’이 설치됐고 대통령은 수시로 청년 일자리를 챙겼다. 그러나 별무성과였다. 오히려 악화됐다. 통계청의 11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15∼29세 청년층 실업률은 9.2%로 1년 전보다 1.0% 포인트 나 상승했다. 체감실업률은 21.4%였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청년실업 대란을 겪고있다.

청년실직 후폭풍을 줄이는 해법의 하나는 기업, 특히 양질의 일자리인 대기업이 신규 채용을 늘리는 것이다. 이들은 정부의 바람과 달리 고용을 줄이고 있다. 대통령 앞에서는 반짝 화답하는 것 같으면서도 돌아서면 그뿐이다. 영업이익이 급증해도 새 인력 뽑는 것은 망설인다. 그렇게 기업하기 좋다고 떠들어댔던 이명박·박근혜정부 시절 비정규직을 양산해 고용의 질을 떨어뜨리는 데 앞장선 게 대기업이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상식을 모르는 것 같다.

취준생 아들을 잠시나마 경험하면서 청년실업의 유해성을 절감했다. 청년 일자리는 빵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좁게는 한 가정의 안정성을 흩뜨리는 것은 물론 사회공동체 균열에 치명상을 입히는 결정타임을 느꼈다. 예컨대 부모의 경제력이 미비한 집의 자녀가 대학을 졸업하고도 몇 년째 놀고 있다고 생각해보라. 그 자체가 재앙이다. 본인의 좌절감은 독립적 정체성을 해치고 가정의 안온함을 사정없이 깨뜨린다. 그 여파는 사회적 신뢰와 유대감의 심각한 훼손을 낳는다. 청년실업의 해악은 부정적 사회 이슈의 단초가 됨으로써 극대화된다. 카이스트 미래전략대학원이 지난해 펴낸 ‘대한민국 국가미래전략’에는 10년 후의 10대 이슈를 꼽았다. 저출산 초고령화 사회, 불평등 문제, 미래세대 삶의 불안정성, 고용불안이 1위에서 4위까지 순서다. 모든 것의 밑바탕에 청년백수의 기제가 자리잡고 있다.

열흘 남짓이면 새해가 솟아오른다. 내년은 청년 일자리 문제의 숨통이라도 트이는 한 해가 될 수 있을까. 긴 시간 좌표만 바라보며 아픔을 겪는 취준생과 그들의 부모, 이들을 안고 있는 우리 사회를 보듬는 말갛게 뜨는 해를 기다린다.

정진영 논설위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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