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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역경의 열매] 배재철 <2> “하나님이 아이들 잘 키워주실 것” 어머니의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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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형제 중 막내인 나는 초등학교 입학 전 대구에서 서울로 이사와 흑석동에서 지냈다. 1970년대 흑석동은 가난한 동네였다. 시골에서 올라왔으니 얼마나 가정살림이 궁색했을까. 부모님은 하루 종일 일하시느라 바빴다.

그러다 보니 우리 삼형제는 집에서 가까운 한가람교회를 놀이터 삼아 지냈다. 교회에 가면 같이 놀 친구가 있었고 피아노 반주에 맞춰 노래도 부를 수 있었다. 당시 교회는 가난한 아이들에게 울타리가 돼 줬다.

우리 집안은 신앙생활을 잘해 오다 할아버지 때 믿음의 대가 끊어지면서 아버지는 교회에 다니지 않았다. 어머니가 예수님을 믿으면서 다시 회복된 믿음의 가정이다.

어머니는 신앙의 원칙을 갖고 계셨다. 세 자녀는 하나님께서 키우신다는 강한 믿음의 확신이었다. “지금 형편이 어려워 우리 아이들에게 잘해주지 못해도, 분명 하나님께서 우리 새끼들을 잘 키우실 것”이라는 그 믿음 하나로 사셨다. 그 확신은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으시다. 요즘도 새벽기도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참석해 늘 자녀를 위해, 손주들을 위해 기도하신다. 돌이켜보면 내가 목소리를 잃고 힘들어할 때 엇나가지 않은 것도 그동안 어머니께서 쌓아올린 기도 덕분이지 않은가 싶다. 기도는 우리 삶을 지탱해주는 원동력이다.

교회에서 놀던 아이가 동네에서 유명해지는 계기가 있었다. 평소 나대는 편도 아니고 외향적인 성격도 아니었지만 교회에서 중창단을 만들어 노래할 때만큼은 정말 행복해 방방 뛰었다. 제일 자신 있었던 것이 노래였다. 당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누가 누가 잘하나’라는 TV 노래경연 프로그램이 있었다.

‘나도 한번 나가서 노래를 불러봤음 좋겠다’고 매일 생각했다. 혼자 가는 건 부끄럽고 자신이 없어 친구들에게 같이 나가자고 제안했다. 매주 토요일 예심이 열렸는데 나와 친구들은 시간에 맞춰 여의도 방송국에 갔다. 부모와 함께 온 아이들로 방송국은 북적였다.

심사위원 5명이 아이들을 한 명씩 불러 한 소절씩 노래를 시키는 것으로 예심을 치렀다. 바로 당락이 결정됐는데, 친구들은 모두 떨어지고 나 혼자만 붙었다. 2심까지 봤고 며칠 뒤 합격 소식을 들었다. 꿈에 그리던 TV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게 된 것이다.

본선에선 ‘별 보며 달 보며’라는 동요를 불렀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무릎을 굽혔다 폈다 하면서 최선을 다해 불렀다. 노래를 다 마치자 심사위원 중 한 분이 이런 심사평을 했다. “배재철 어린이는 목소리가 좋아서 나중에 성악가가 되면 좋겠어요.”

그날 장려상을 받았다. 그리고 수상자들이 함께 실력을 겨루는 기말대회에도 출전해 ‘흰 물결이 밀려오는 바닷가에서’를 불렀다. 이 대회를 위해 음악을 전공한 교회 전도사님이 레슨을 해주셨다. 기말대회서도 장려상을 받았다.

성악가가 뭔지도 몰랐던 내게 성악가의 꿈을 심어준 계기였다. 나는 성악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공부보다 노래에 집중했다. 기타를 치면서 온종일 노래만 불러도 배고프지 않았다. 사실 성악을 하려면 제대로 레슨을 받아야 하지만 우리 가정은 그럴 형편이 못됐다. 그렇다고 노래하는 데 주눅이 들거나 하지도 않았다. 부모님은 언제나 “네가 좋아하는 것을 재밌게 하라”고 격려해주셨다. 환경은 열악했지만 내 마음은 풍요로웠고 그런 자신감으로 노래를 불렀다.

정리=노희경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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