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자유글 주절주절....

  • 이창섭
  • 1359
  • 10

첨부 1


설교준비를 합니다. 대강 아웃라인을 잡고 관련된 여러가지를 찾으려고 뉴스엔조이에 가봅니다.(이곳에서 실제 설교와 연관된 여러가지를 얻습니다) 그곳에 뜨거운 감자가 있습니다. 평신도가 설교 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였습니다. 그 기사 가운데 재미 있는 부분이 \찬성론자들은 초대교회 스데반과 빌립 집사의 맹활약, 종교개혁자들이 주장한 만인제사장직을 대표적인 근거로 꼽으면서 평신도의 설교권을 옹호한다. 게다가 평신도를 강단에 세우는 교회 또한 확산되는 추세여서 이들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이 나름대로 논리와 당위성 그리고 성경적 근거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한국교회 내에서는 어디까지나 비주류에 해당할 수밖에 없다. 한국교회 대부분 교단헌법이 제도적으로 평신도 설교권을 제한하고 있다. 즉 설교(강도)권과 치리권을 가진 장로를 ‘목사’라 부르고 치리권만 가진 장로를 ‘장로’라고 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 그리고 강도사나 전도사에게는 노회나 당회의 재량으로 치리권 없이 설교권만 부여한다. 따라서 평신도는 교회법적으로 설교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질 수 없는 존재다.\ 이 기사를 쓴 기자가 바라보는 것 중에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있더라도 한국교회 내에선 비주류다!!하는 것,... 저 역시 주일학교 교사 시절 이런 의문이 있었습니다. 요즘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주일학교 교사 할때 주일학교 오후예배시 교사들이 돌아가면서 설교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의문이 낮예배시 왜 장로님들이나 집사님은 설교를 하지 않을까?? 왜 장로님들은 기도만 할까? 그러다가 저 역시 목사라는 입장까지 왔는데... 문제는 이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성경 Vs 교회법 여러분은 어느편에 손을 들어주실건가요?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삭제

"주절주절...."

이 게시물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0

profile image
김원규 2004.06.12. 11:57
기도하는 것은 장로님이나 집사님이나 괜찮습니다. 하지만 설교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죠. 왜그런지는 설교에 대해서는 목사님께서 더 잘아시겠죠?
송동수 2004.06.12. 11:57
성경이 법보다 우선이라 생각합니다. 신학공부는 하지 않았더라도 인격으로나, 성경적인 지식이나, 설교를 잘 할 수 있다고 검증된다면 설교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종교개혁당시 평신도에게 성경을 돌려주었다면, 이제는 평신도에게 사역을 돌려주어야 한다고들 합니다. 종교개혁은 지금도 계속되어야 하겠지요.^^ 목사님 설교준비 잘하세요.
profile image
정산 2004.06.12. 11:57
설교를 평신도가 하게 되면 질서가 무너집니다. 초대교회에 평신도가 설교를 한것은 전도 차원에서, 교회를 세우기 위해 한 것이지만 지금은 곳곳마다 교회가 많이 있고, 목회자가 많이 배출되기 때문에 평신도가 설교를 하면 문제가 됩니다. 체계적으로 배운것이 없이 그저 성경 지식으로 설교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다가 평신도의 입장은 성경연구가가 아닌 봉사자의 자리에 있으니까요. 하나님께서 질서를 원하시지 합리화를 원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가장 빠지기 쉬운 실수가 합리화 이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평신도가 설교를 하는 것은 목회자가 없는 곳에선 어쩔 수 없이 할 수 있겠지만 목회자가 있는 곳에서는 설교를 하는 것은 보기 좋지 않다고 봅니다.
김범석 2004.06.12. 11:57
저도 평신도의 설교에 대해서 반대....! 자기철학이나 경험담이 될 확률이 큽니다. 먼저 사명감에 대해서 검증이 없고... (전 목회자들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이점이 아주 중요하다고 보고, 검증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설교보다는 간증이 될 확률이 크며 (\성경을 잘 안다는 것\과 \체계적인 교육과 훈련과 검증\은 차원이 다릅니다.) 평신도가 설교\권\을 주장하면 교회는 무너집니다. (그렇다면 가정에서 예배를 봐도 좋다는 주장이 나오겠죠.) 무례하게 들릴지 모르겠습니다만...(절대 딴지가 아니니 용서하시길... ^^) 저는... 인격이나 지식을 바탕으로 하는 것은 설교가 아니라고 봅니다. 사모님들이 나오셔서 \설교\한다고 광고하시는것도 사실 개인적으로 달갑지 않습니다. 함께 \나누시\는 시간이어야지요. \설교는 \아는 것을 이야기 하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이 아니던가요?\ * 개인적인 \주장\입니다.
장낙중 2004.06.12. 11:57
조금 죄송한 말씀이지만... 요즈음 목회자님들이 너무 많이 배출되어 일부 목회자님의 경우 목회를 인도할 교회마저 갖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세상입니다. 평신도가 설교를 할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고(아니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합니다. 평신도에게 설교가 맡겨질 정도이라면 아마도 웬만큼 검증이 되지 않고서는 또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그리 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때로는 넘쳐나는 목회자님들로 인해 극히 일부분이기는 하지만 목회자님의 설교마저도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대언일까하고 의아히 여기게 되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차라리 갖추지 못한 극히 일부의 목회자님들보다는 갖춘 평신도의 설교도 어떨런지요.. 물론 하나님의 말씀의 대언이냐 아니냐는 시비는 따르겠지만.. 그리고 초대교회 스데반과 빌립 집사의 활약은 ?
profile image
정산 2004.06.12. 11:57
초대교회의 특성과 환경을 현대와 비교하는 것 부터가 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 같네요. 그렇게 성경대로 살려고 한다면 초대교회 처럼 전재산을 다 팔아서 교회에 드리고 공동체 생활을 하라고 해야 겠죠? 이러한 전재산을 기증하고 공동체 생활을 하는 것이 공산주의 나라들 입니다. 요즘 공산국가들도 자본주의 방식으로 돌아서고 있긴 하지만... 성경에 있는 이야기를 현대에 맞추는 것도 어렵지만 초대교회에 평신도가 설교했다고 해서 지금도 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체계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잡혀가는 것입니다. 처음에 사도들만 설교했는데 12명만 하기에는 너무 힘들어서 집사를 세웠다는 점을 중시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들의 직분은 사도들을 도와 교회를 돌보는 책임이었듯이 그 중점은 설교가 아닌 봉사와 돌봄이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문제의 본질을 떠나 엉뚱한 곳에 촛점을 맞추는 것은 질서 뿐만 아니라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것을 보고 딱 막혀진 사고방식으라고 할지 모르지만 요즘에도 보면 하나님께서 주의종과 평신도를 구분하시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주의종은 기름을 부어 받은 직분 이듯이 하나님의 인정이 있지만 평신도는 주의종이 뽑은 사람이라는 직분론도 들 수 있겠죠. 목회자들이 많이 배출되다 보니 정말 소명을 받지 못한 사람들도 많이 나오고 있는 현실은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는 빈틈이 없고 실수가 없으시니 이것도 뭔가 뜻이 있겠죠. 예레미야가 있던 시절에도 거짓 선지자가 많이 있었다는 것을 상기해 보면 될 듯 하네요.
이창섭 2004.06.12. 11:57
목사라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먼저 가집니다. 에베소서에 나오는 목사는 사실은 목자라는 말이죠. 목사라는 직책은 기독교의 문화입니다. 전통입니다. 전통=성경 이라는 공식은 성립이 되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교회는 예수만이 전부입니다. 그속에는 주의 종도 없고 평신도도 없고 모두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존재합니다. 이것을 만인제사장이라고 부릅니다. 구약에서는 몇몇 직분을 기름을 부어 세웠지만 신약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신약에서의 직분은 은사입니다. 은사란 은혜입니다. 은혜는 하나님 맘대로 입니다. 초대교회때의 질서의 문제는 수직적 계급 개념이 아닙니다. 고전에서 질서대로 하라고 순서대로 차례대로으 개념입니다. 초대교회때의 집사님들의 본질이 돌봄이라고 하셨는데..사도행전에 보면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자라고 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하셨던 일을 개개인의 마음에서 확산시키시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스데반이나 빌립이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직분을 주의 종과 평신도로 구분을 카톨릭과 다를 바가 없게 되어버립니다. 교회법은 그 교단을 유지시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교회법은 조금씩 다릅니다.
이창섭 2004.06.12. 11:57
교회직분에 관해선 세계적으로 유명한 교회직무론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분도출판사에서 나왔습니다. 스힐레벡스에 의하면 목사는 그 지역 공동체의 요구에 의해서 발생되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각 공동체에서도 설교라는 것을 그 소속된 공동체에서 결정 할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획일화해서 목사만! 신학교육을 받은 자만!하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장낙중 2004.06.12. 11:57
질서가 무너진다는 것의 개념이 잘 서지 않습니다. 그 질서라는 것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를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인간의 편의에 의해 인간이 세운 질서를 의미하는 것인지.. 우리가 역사적 사건들을 보아온 바에 의하면 인간이 세운 질서는 언제든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께서 세운 질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무너지지는 않습니다. 이창섭목사님의 글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습니다.
최윤정 2004.06.12. 11:57
목사님의 말씀을 통한 은혜는 찬양과기도의 은혜에비해 저에겐 아주 크게 자리합니다.. 특히 주일예배는 저에게는 특별합니다..물론 다른분들도 그러시겠지만.. 목사님의 설교말씀이 일주일 내내 저에게 많은 영향력을 주십니다.. 목사 직분이 아닌분들이 설교를 하시는 경우도 많이 보았습니다만은.. 모든것은 하나님께 여쭙고 허락되야 가능하겠죠.. 장로님들을 비롯한 목사직분이 아니신 분들이 설교를 하실때에는 그만큼의 하나님과의 교제가 있겠죠..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일테죠.. 구약시대에는 성전에 제사장이 발목에 줄을 달고 들어간다 배웠습니다.. 제사장이 조금이라도 불손하면 바로 죽임을 당했다죠.. 제사장이 성전에 들어간후로..기약된 시간이 흘러도 나오지 않으면 밖에 있는 사람들이 발목에 연결된 줄을 잡아당겼다네요..(이말씀을 듣고 정말 무서웠습니다) 성전은 제사장 말고는 아무도 들어갈수 없는 곳이였기 때문에.. 그리 할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무엇이 어떻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일이라면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성도님들께서 더욱더 잘 아실꺼라 생각이 됩니다..저또한 평신도 입장에서 모든걸 듣는 입장인지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지는 설교를 듣는 분들께.. 바로 전달됩니다.. 때론 은혜로 눈물이 나고 때론 졸음으로 하품이 나니까요.. 듣는이로써 느끼기에는.. 설교는 아무나 할수 없다 느껴집니다.. 깊게 들어가다 보면.. 각 교회에서 성도님들께 직분을 주시기에 앞서.. 고려할 사항이 많다는거... 적어도 평신도들이 보았을때..\저정도는 나두 할수 있어..\ 이건 아니겠죠??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